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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개인 투자자 국내 증시 거래액, 이미 전월 웃돌아 "미국, 전망 좋은 줄 알았는데" 韓-美 증시 상승률 격차 두드러져 상장사 호실적, 밸류업 흐름 등이 상승세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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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투자 규모가 확대됐다. 얼어붙었던 국내 증시에 '봄바람'이 불어 드는 가운데, 미국 증시 투자에 힘을 싣던 개인 투자자들이 하나둘 국내 증시에 복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정부 주도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움직임, 상장사들의 호실적 등이 국내 증시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 국내 증시 투자 확대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의 2월(~20일) 국내 증시 거래 금액은 200조원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달(188조원) 전체 거래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21조7,000억원으로 코스피가 2800선을 돌파했던 지난해 6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등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15조원대까지 미끄러졌던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코스피·코스닥 시장 합산)은 17조5,097억원에 달했다. 이는 연초(1월 2일) 15조6,823억원 대비 11.6% 증가한 수치이자, 삼성전자 '빚투' 수요가 급증했던 지난해 11월과 유사한 수준이다. 신용거래융자 잔액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갚지 않고 남은 자금으로,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빚을 내 투자하는 투자자가 많을수록 늘어난다.
국장 강세에 韓-美 증시 '저울질'
시장에서는 지난달 부진한 국내 증시에 실망해 미국 증시로 눈을 돌렸던 개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국내 증시로 대거 복귀, 거래액 상승세를 견인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월 한국인들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 규모는 40억7,900만 달러(약 5조8,7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21년 1월(45억3,200만 달러) 이후 4년 만의 최대치이자, 예탁결제원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품고 국장에서 대거 이탈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 주식 시장의 상승률은 한국보다 뒤처지고 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올해 한국 코스닥은 14% 넘게 뛰며 전 세계 주요국 중 최상위권에 올랐고, 코스피 역시 11.5% 오르며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의 3대 주요 지수는 3~4%대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미국 증시로 빠져나갔던 국내 투자자들이 충분히 복귀를 고민할 만한 상황"이라며 "국장으로 되돌아온 투자자들도 많고, 아직 한국 증시와 미국 증시 사이에서 '저울질' 중인 투자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향후 관건은 국내 증시의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다. 현시점 대다수 전문가는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 공매도 재개, 내수 부진 등 한국 증시 상승을 짓누르는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증권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증시에 대한 낙관론도 제기되는 추세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펴낸 ‘3월, 국장의 매력’이란 보고서에서 코스피 전망치를 종전 2800에서 3000으로 높여 잡았다. 김 연구원은 “국내 주식시장은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연착륙할 때 전 세계 주식 시장을 아웃퍼폼(평균보다 성과가 좋은 것)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코스피는 현재 예상 이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10.1배로 밸류에이션(가치) 부담이 높지 않고 유동성도 보강되고 있기 때문에 3월부터 강세장을 예상한다”고 짚었다.
윤지호 경제평론가도 “현재 한국 증시는 기업 실적 대비 저평가된 상태로, 환율이 하락하면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어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코스피 2847)까지 상승할 여지가 있다”면서 “주주 가치를 높이려는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한국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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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상승세의 원인은?
국내 증시가 활기를 되찾아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소각 등 상장사들의 '밸류업' 노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14조3,156억원으로 2023년(8조2,863억원) 대비 72.8% 증가했으며, 자사주 소각 규모도 156.0% 급증해 12조원을 넘겼다. 지난해 자사주를 매수한 상장사는 464사로 2023년(376사) 대비 23.4% 늘었고, 자사주를 소각한 상장사는 96사에서 137사로 42.7% 급증했다.
다만 국장 강세의 원인을 '밸류업'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국 투자자들의 심리는 철저히 실적과 주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두드러진 증권주 투자 열기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일 메리츠증권의 모회사인 메리츠금융지주는 장중 12만4,5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종가는 12만3,000원으로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11만4,100원) 대비 7.8% 상승했다. 지난 19일 메리츠금융지주가 역대 최고 실적 및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메리츠금융지주는 전년 대비 8.7% 증가한 3조1,88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전년보다 9.8% 증가한 2조3,334억원이었다.
다른 증권주들도 최근 일주일 새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20일 미래에셋증권은 5.9% 상승한 8,860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한국금융지주(4.2%) △NH투자증권(4.4%) △삼성증권(4.1%) △키움증권(3.7%) 등의 주가도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국금융지주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키움증권 등 4개 증권사는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NH투자증권의 영업이익(9,011억원)도 전년 대비 24.2% 성장했다. 이 같은 증권사들의 주가 상승세와 관련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주들의 상승세는 호실적이 곧 밸류업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사례"라며 "현재 국내 증시는 실적이 개선되며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몰리고, 주가가 내리면 투자자들이 떠난다는 매우 기본적인 시장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