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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멸 위기 석화업계에 ‘셀프 구조조정’ 주문한 정부,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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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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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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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자율에 맡긴 구조조정
정부 "통폐합 방안 마련해 와라"
업계 "기업에 떠넘기는 미봉책" 비판

정부가 고사 위기에 몰린 국내 석유화학 산업을 살리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중국발(發) 공급과잉으로 경쟁력을 잃은 나프타분해시설(NCC)을 25%까지 줄이고,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 전환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빅딜 방안은 나오지 않고, 기업들의 뼈를 깎는 쇄신 노력만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당근’ 없이 과도하게 ‘채찍’만 강조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또다시 치킨게임에 내몰리게 됐다는 지적이다.

先 자구노력 後 정부 지원 방침

20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에서 "주요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하는 사업재편 협약이 체결됐다"며 "올해 연말까지 각 사별로 구체적 재편 계획을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산경장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렸다. 위기 산업 중 석유화학이 제일 먼저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구 부총리는 "과잉설비 감축과 근본적 경쟁력 제고만이 살 길"이라며 최대 370만 톤(t) 규모의 NCC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전체 나프타 생산량(1,470만 톤)의 18~25%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는 "글로벌 공급 과잉이 예고됐음에도 업계는 과거 호황에 취해 설비를 늘리고 고부가 전환도 놓쳤다"며 "이제는 사즉생의 각오로 사업 재편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도 서울 대한상의에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자율 협약식'을 열고 3대 구조재편 방향을 공식화했다. △과잉 설비 감축 및 스페셜티 제품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이 골자다. 전남 여수, 충남 대산, 울산 등 3대 석유화학단지를 대상으로 구조개편을 동시 추진하고, 기업이 낸 자구노력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금융·세제·규제완화 지원을 적시에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는 자발적으로 재편에 동참하는 기업에 맞춤형 지원을 내놓는 대신, 감산·설비 조정에서 빠지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는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진정성 있는 계획을 내놔야 한다"며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기업은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산경장을 수시로 열어 재편 진행 상황을 점검, 기업들의 재무·자구노력을 밀착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고용감축 없는 구조조정’ 요구한 정부, “구체적 지원책은 빠져”

이로써 석화 구조 조정은 첫발을 떼게 됐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번에도 구체적인 구조 개편 방안 확정을 연말로 미루자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작년 12월로 되돌아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말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석유화학의 자율적 사업 재편을 촉구했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없었다. 그사이에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에 의뢰한 용역보고서는 이미 지난 3월 산업부에 제출됐지만, 아직 정부의 구체적 실행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달 초 국회 국회미래산업포럼에서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재편'을 주제로 한 포럼을 열고 의견을 공유한 게 전부다.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제출된 보고서가 '봉인됐다', '내용 관련 함구령이 내려졌다', '업계와 정부 제출 자료가 서로 다르다', '포럼에서 공개된 일부 내용은 그동안 나왔던 것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등 말만 무성하다.

더군다나 이번 방안은 사실상 구조조정을 하되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설비통합이나 구조조정은 반드시 인력 감축을 수반하지만, '노동 친화'를 강조하는 진보 정권은 이를 부담으로 여긴다. 석유화학 산업의 전후방 고용 유발 인원은 40만여 명(고무 및 플라스틱제조업종 21만3,000명, 기타 화학 제품 제조업 17만 명, 화학섬유 제조업 1만2,000명, 석유정제업종 1만1,000명)에 달한다. NCC 구조조정이 화학 산업 생태계 전반은 물론, 지역 경제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또 하나의 폭탄인 셈이다. 우리는 이미 조선 산업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인력 감축을 동반한 구조개편과 함께 고부가가치 선박 제조로 위기를 넘겼고, 미국과의 협력을 통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사업 재편은 오로지 민간 기업 몫, 강력한 인센티브 수반돼야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은 명확하다. 설비 증설과 확충으로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가 좀처럼 따라오지 못한다는 데 있다. 2020년대 들어 중국에 이어 중동 산유국까지 대거 설비 증설에 가세하면서 수익성은 급전직하했다. 수년 전부터 켜진 경고등에도 기업들은 그간의 관성과 호황에 취해 대응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그사이 수요 부진까지 겹치며 구조적·장기적 불황에 접어든 것이다.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의 평균 설비 가동률이 60% 아래로 추락하고, 대기업 합작사로 영업이익만 1조원(약 7억 달러)이 넘었던 여천NCC가 부도 직전까지 몰린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정부는 업체 간 설비 통합(수직 통합)을 가장 현실적인 구조 개편 방안으로 보면서도, 기업별·산단별 생산설비 감축 목표 방법과 감축 이행 시기는 기업의 자율 판단에 맡겨뒀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빅딜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구체적 대안 없이 기업에만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체 간 이해관계는 제각각인데 업체끼리 정보를 공유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대상이 되는 등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며 “극심한 불황에 자금마저 말랐는데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없이 기업들의 노력만 강조하니 ‘맹탕 발표’란 평가가 나온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국내 최대 석화단지인 여수는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대형사들이 밀집해 있어 자율적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한화와 DL이 공동 경영하는 여천NCC는 불황 때마다 의사 결정이 지연되고 경영권 갈등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여러 기업과 소통해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합 금지 예외 등 규제 완화와 보조금 지급 등 사업 재편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지난 36년 동안 적용된 적이 없는 공정거래법 40조 2항을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조항에 담긴 ‘불황 극복을 위한 산업 구조조정 목적일 경우 인수합병 심사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용해 정부가 사업 재편의 길을 터주자는 얘기다. 전문가들 역시 과감히 썩은 살을 도려내려는 기업에는 파격적인 금융 지원과 무리한 규제의 완화로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 안전 위험이 상존하는 중화학 공업의 특성에 맞는 규제 개선도 계속 이뤄져야 하며,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대책도 업계 및 노동계와 합리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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