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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면세점 중 유일한 영업익 흑자 신라·신세계는 적자, 공항 임대료 발목 하반기 유커 복귀 기대감, 유치 경쟁 속도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둘러싼 신라·신세계면세점과 공항공사 간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2년 전 인천공항 입찰에서 탈락한 롯데면세점이 수익성 개선 흐름을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사업권을 따내지 못해 한때 패자로 불렸지만 업황 둔화 속에서 월 300억원대 고정비를 떠안는 10년 계약을 피하면서 오히려 체질 개선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은 중국 보따리상(다이궁) 거래 중단을 비롯한 구조 혁신을 바탕으로 내실 경영 기조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인천공항서 발뺀 롯데免, "졌지만 이겼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롯데의 면세사업 부문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 65억원, 상반기 누적 21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분기 6,685억원, 상반기 1조3,054억원으로 각각 19.3%, 20.8% 감소해 외형은 축소됐지만 수익성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면세점이 두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자, 업계에서는 과거 인천공항 입찰에서의 보수적 선택이 되레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이 나온다. 2023년 DF1·DF2 구역 신규 사업권 입찰에서 롯데는 신라·신세계에 밀리며 22년 만에 공항 면세점에서 철수했다. 당시에는 면세사업 경쟁력 약화 우려가 제기됐으나 업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월 300억원대 고정 임대료를 10년간 부담하는 구조를 피한 셈이 됐다. 당시 신라·신세계는 최저 수용금액보다 각각 68%, 61% 높은 8,987원과 9,020원의 객단가를 써낸 반면 롯데는 6,000~7,000원대의 보수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높은 공항 임대료에 신라·신세계는 적자 지속
실제로 신라와 신세계는 인천공항 사업권을 따냈지만 현재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올해 2분기 신라는 113억원, 신세계는 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어갔다. 두 업체는 입찰 당시 코로나19 엔데믹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를 기대해 입찰가를 높게 써냈으나, 공항 이용객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면세점을 찾는 발길은 줄었다. 여행 패턴이 변화한 데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등 '가성비' 쇼핑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내국인 역시 공항 면세점보다는 간편한 온라인을 이용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다이궁과의 거래를 단칼에 끊어내지 못한 점도 수익성 악화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그간 면세업계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서는 다이궁 거래를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이궁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사 대비 송객수수료율과 할인율을 높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롯데는 지난 1월 다이궁과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신라와 신세계는 의존도를 줄이는 데 그쳐 왔다.
이렇다 보니 인천공항의 높은 공항 임대료는 이들 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인천공항공사는 여객 수에 따른 임대료를 받고 있다. 면세업체들은 구역별로 여객 1인당 1,109~9,020원을 임차료로 지불하고 있다. 지난 4월 인천공항 출국객 기준 신라와 신세계의 월 임대료만 해도 300억원이 넘는다. 경쟁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롯데가 오히려 수혜를 입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신라와 신세계가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써낸 것은 당시 업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며 “입찰 시점에도 수요 회복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과도한 베팅이 패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압박이 커지자 신라·신세계는 공항공사와의 갈등 국면에 놓여 있다. 두 회사는 면세점 매출 비중이 공항 상업시설에서 크다는 점과 해외 주요 공항의 임대료 감면 사례 등을 근거로 임대료 40% 인하 조정을 신청했다. 협상이 불발될 경우 각 사당 1,900억원의 위약금을 감수하고서라도 철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사는 차임 감액 요건 미충족, 타 사업자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며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유커 무비자 입국, 면세업계 명운 가를 분수령
업계에서는 오는 9월 말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중국 단체관광객(游客·유커)에 대한 한시적 비자 면제를 면세점들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큰손'으로 불리는 유커의 복귀가 인천공항 입점 면세점의 실적 회복으로 이어질지가, 승자의 저주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간 면세업계는 코로나19와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궈차오)의 영향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유커에 대한 무비자 허용은 매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비자 허용이 중국의 최대 명절인 국경절(10월 1~7일)을 바로 앞두고 시행되는 만큼 예상보다 많은 중국 유커가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유커는 오래전부터 한국 여행 시 면세품 등을 대량으로 사 가기로 유명했다. 통상 유커는 기업 또는 기관 등으로부터 여행 경비를 지원받아 오는 경우가 많아 개별 관광객보다 구매력이 훨씬 높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인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한 점은 변수다. 최근 중국인들은 코로나19 이후 소비 성향 변화로 과거처럼 대규모 쇼핑에 집중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부동산 경기 장기 침체, 높은 청년 실업률,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압력 속 중국인의 지갑이 얇아진 탓이다. 실제 유커를 비롯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경우 과거에는 쇼핑을 목적으로 세웠지만, 최근 들어서는 K-팝, K-푸드 등 문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쇼핑 또한 면세점 보다는 다이소나 올리브영 등 중저가 제품을 파는 가게를 찾아 소비하는 경향이 짙다. 한 업계 전문가는 "면세업계가 유커발 호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쇼핑 패턴 변화 등 시류를 감안해 중장기적인 판매 촉진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