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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미지급 보조금으로 인텔 주식 확보 예정 '친트럼프' 日 소프트뱅크도 인텔에 20억 달러 투자 기술력 부족으로 무너지는 인텔, '국영 기업' 된다고 살아날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 지분 약 10%를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인텔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성장을 견인하고, 자국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美 정부, 인텔 1대 주주 등극 전망
18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 지분 약 10%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텔은 앞서 전임 바이든 정부 당시 시행된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정부 보조금 109억 달러(약 15조1,000억원)를 지원받기로 한 상태이며, 지난 1월 시점으로 총 22억 달러(약 3조567억원) 가량을 지급받은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아직 지급되지 않은 지원금을 인텔 주식으로 바꿔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기준 인텔의 총 발행 주식은 약 43억7,900만 주이며, 시가총액은 1,037억 달러(약 1,438조원)다. 미국 정부가 시가총액의 10%인 103억7,000만 달러(약 144조원) 규모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8일 종가(23.65달러) 기준 4억3,900만 주를 새로 발행해야 한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미국 정부는 지분 9.1%를 보유한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되며, 현재 최대 주주인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지분율은 8.92%에서 8.10%로 내려간다. 인텔이 사실상 미국 국영 기업이 되는 셈이다.
다만 소식통들은 구체적인 지분 확보 규모와 실제 계획 추진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반도체법에 따라 배정된 다른 보조금이 인텔 지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안에 얼마나 무게를 싣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소프트뱅크도 인텔에 힘 보탠다
일본의 IT 대기업이자 투자 기업인 소프트뱅크그룹도 미국 정부와 발맞춰 인텔 주식 매입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인텔은 18일 소프트뱅크가 20억 달러(약 2조7,790억원)를 들여 인텔 보통주 8,700만 주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입 가격은 주당 23달러(약 3만1,979원)로 인텔의 18일 종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이번 투자로 인텔 지분 중 약 2%를 확보해 6대 주주에 오르게 된다.
이번 출자에 대해 소프트뱅크는 "인텔과 소프트뱅크그룹이 미국에서 첨단 기술, 반도체 혁신 투자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지털 전환, 클라우드 컴퓨팅, 차세대 기반 시설을 뒷받침하는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 속도를 높여 인공지능(AI) 혁명 실현이라는 장기 비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출자에 대해 "인텔에는 트럼프 정부가 출자를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소프트뱅크그룹은 미국 정부와 보조를 맞춰 미국 첨단 반도체 생산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소프트뱅크 손정의(손 마사요시) 회장은 예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가 "정부 개입으로 될 일 아냐"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인텔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을 앞세워 미국 내 반도체 제조·생산 공급망 강화에 나섰다고 평가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 기업이 반도체 설계를, 한국·대만 기업들이 제조를 전담하는 분업 구조를 띠고 있다. 미국이 정부 지분 투자를 통해 ‘토종 기업’인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 육성에 성공하면 그만큼 시장에서 강력한 패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의미다.
인텔의 부진한 성장세 역시 미국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뒤처지고, 파운드리 사업 부문 고객사 확보에 실패하며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립 부 탄 인텔 CEO가 15% 이상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독일과 폴란드에 건설하려던 파운드리 팹 프로젝트를 취소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이유다. 이에 더해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짓는 최신 팹의 완공 시기도 2030년으로 연기했으며, 고객사 확보나 수율 달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차세대 파운드리 14A(1.4나노미터) 공정 개발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월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서 인텔의 시장 경쟁력이 강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10% 지분 인수는 사실상 돈 태우기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텔의 반도체 제조 기술이 경쟁사 대비 부족한 만큼, 단기간 내에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다. 아울러 라르곤 애널리스트는 "정부의 출자가 확정되면 인텔이 제조 설비 투자를 확대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규모 손실과 현금 유출을 멈출 만큼 고객 기반을 확충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