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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에 포함된 철강·알루미늄 가치에 50% 관세 이미 운송 중인 물품에도 적용 미 식품·제조업계 반발 “공급망 차질 불가피”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50%에 달하는 품목관세를 부과 중인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407종을 추가로 발표했다. 상품에 쓰인 철·알루미늄의 원가에 50% 관세를 매긴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 식음료업계에서 포장재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등 자국 기업들의 직접적인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장악한 핵심광물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고율 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50% 철강 관세 407개 제품 추가
1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방관보에 따르면 이날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소화기, 기계류, 건설 자재 등 철강이나 알루미늄이 포함된 407개 제품군을 관세 부과 대상인 ‘파생(derivative)’ 제품 목록에 추가했다. 이로써 풍력 터빈, 이동식 크레인, 철도 차량, 오토바이, 선박 엔진, 가구, 가전제품(냉장고·건조기 등), 화장품 포장재(에어로졸 캔 등)까지 관세가 적용된다. 새 조치는 18일 0시(미 동부시간)부터 즉시 발효됐으며, 이미 운송 중인 물품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이번 조치에 따라 해당 제품의 철강·알루미늄 원재료에는 50% 관세, 나머지 부품에는 국가별 상호관세율이 각각 매겨진다. 이를테면 화장품 수출시 용기에 포함된 금속 성분에는 50%, 그외엔 국가별 관세가 적용된다. 자동차 및 가전 부품 일부에도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부과된다. 상무부는 자동차 배기 시스템 부품, 전기차(EV)용 전기강판, 버스·에어컨 부품, 냉장고·냉동고·건조기(알루미늄 추가) 등 가전 부품도 새로 관세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항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 제한 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한다.
캔 원자재 비용 부담 커지자, 플라스틱·종이로 눈 돌리는 美 기업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등 저가 수입품에 맞서 미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식품 포장에 쓰이는 철강과 알루미늄도 타깃이 되면서 미국 자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조림 제조업체 퍼시픽 코스트 프로듀서스의 영업·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앤디 러식은 “내년 봄까지 캔 납품 단가는 관세 영향으로 최대 24%까지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퍼시픽 코스트는 관세로 인한 올해 비용 증가분이 800만~1,000만 달러(약 110억~~138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내년에는 4,000만 달러(약 552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퍼시픽 코스트는 스위스의 테트라팩이나 SIG 그룹이 생산하는 종이 팩이나 레스토랑용 토마토 소스 제품을 보다 저렴한 호일 파우치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투자자 대상 회의에서 “캔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 포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SIG그룹의 사무엘 시그리스트 CEO도 “알루미늄이 들어가지 않는 무균 종이팩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며 “무역 갈등이 포장재 전략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 내 알루미늄 제련소들도 직격탄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알루미늄 자체의 시장 수요가 축소될 경우, 생산 능력 확대는커녕 공장 가동률 하락과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관세 정책이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과 달리, 자국 내 제조 기반을 잠식할 위험으로 대두되는 셈이다.

핵심광물 주도권 잡기 위한 포석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러한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고율 관세 정책을 고집하는 배경엔 핵심광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중이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심광물을 둘러싼 공급망 전쟁이 격화되면 광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자국 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에너지부(DOE)가 반도체와 전기차 등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의 채굴·가공·제조 기술 강화를 위해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 방안을 발표한 것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핵심광물 무기화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실제 양국의 1·2차 무역협상에 이어 최근 진행된 3차 협상에서도 희토류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중국과의 무역전쟁 휴전 기간을 90일 추가 연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60%, 가공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군수산업 등 첨단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만큼 중국이 수출을 제한하면 글로벌 시장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소재인 갈륨 생산의 대부분(98.7%)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은 갈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광해광업공단의 수급동향지표에 따르면 구리·몰디브덴·주석은 '관심' 단계, 텅스텐·갈륨·안티모니·인듐은 '주의' 단계로 분류됐다. 이 중 전자·전기 산업의 필수 소재인 구리의 경우 가격이 점차 오르면서 공급 불안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8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 협상안으로 러시아에 핵심 광물 접근권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제안에는 러시아가 미국 알래스카의 천연자원을 활용하도록 허용하고 러시아 항공우주 산업에 대한 일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 내 희토류 매장지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방안과 함께 우크라이나 광물 매장지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합작 채굴 투자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제시했던 휴전 시한을 '50일 이내'에서 '10일 내 휴전'으로 단축해 빨리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가에 대해 2차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대상국 목록에서 빠져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