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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 전면 발효 13시간 만에 변덕 美 ‘34+50%’ 때리자 中 비례 대응 트럼프는 125%로 반격 또 반격 中에만 화력 집중, 다른 나라는 협상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25%로 올리고 다른 나라에 대한 국가별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했다. 상호관세를 전면 발효한 지 13시간 만의 전격 후퇴다. 이번 상호관세 유예는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관세 폭격으로 금융 시장 혼란이 커지고, 경기침체 우려로 미국 내 비판 여론이 확산된 가운데 나왔다. 또한 대미 보복을 선언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대한 끌어 올려 미·중 관세전쟁에 화력을 집중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의 칼끝이 중국을 겨누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상호관세 90일간 일시중단
9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날 오전 0시 1분을 기해 상호관세가 발효된 75개 이상의 국가가 미국에 대해 어떤 방식이나 형태로든 보복하지 않았다며 “90일간의 ‘일시중단(PAUSE)’을 승인하고 이 기간 동안 상호관세를 10%로 대폭 낮춰 즉시 발효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WA)' 행사에서 전 세계 모든 교역국에 '10%+α'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5일 10%의 기본관세를 먼저 발효한 뒤, 9일 자정 직후부터는 국가별 관세·비관세 장벽을 감안해 '+α'의 추가 징벌적 관세를 발효했다.
이번 상호관세는 기본 관세에 더해 이른바 '최악의 국가(worst offenders)'에 대한 개별 관세로 구성되는데 이 중 개별 관세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EU, 대만, 인도 등 57개국에 부과된다.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살펴보면 △중국 34% △EU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인도 26% △태국 36% △스위스 31% △인도네시아 32% △말레이시아 24% △캄보디아 49% △영국 10% △남아프리카공화국 30% 등이다. 가장 높은 관세를 적용받는 나라는 캄보디아(49%)다. 이어 베트남(46%), 스리랑카(44%), 방글라데시(37%)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13번째로 높아 캐나다, 멕시코와 같은 수준이다.

對美 관세 84%? 그럼 우린 125% ‘강대강 맞불’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유예하면서 대다수 관세 부과 대상국은 90일간 10%의 관세만 적용되지만, 중국은 예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는 “즉시 125%로 인상한다”며 “가까운 시일 내 중국은 미국과 다른 국가를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도, 용납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다른 나라를 분리 대응하는 '투트랙' 관세 정책 카드를 뽑아 든 건,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84%까지 올리며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한 데 대한 재보복이다.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맞불관세를 놓으며 당초 예상보다 강력 대응하자, 화력을 집중해 중국을 코너로 몰고 관세전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취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중국에 두 차례에 걸쳐 총 20%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 2일 상호관세 조치를 통해 중국에 추가로 34% 관세를 매겼다. 이에 중국이 미국에 대해 똑같이 34% 관세를 부과하며 받아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8일 50%의 관세를 더 부과해 중국의 관세를 104%까지 올렸다. 중국은 다시 ‘50% 추가 관세’로 대미 관세를 84%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 같은 관세 맞받아치기로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9일 중국 관세를 다시 125%까지 올린 것이다.

관세전쟁 작전 범위, ‘전 세계’서 ‘중국’으로
관세 정책이 미국의 경제 위기는 물론 금융 위기까지 동시에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관세 정책 후퇴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최근 금융 시장에서는 주식 투매에 이어 세계 최고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 투매 물량까지 쏟아졌다. 미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30년물 수익률은 최근 3거래일 동안 약 50bp(1bp=0.01%포인트) 치솟았다. 국채 가격이 내려가면 국채를 담보로 자금을 융통한 거래의 청산 압력이 커지고 이는 유동성 고갈, 나아가 금융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또한 이번 유예 조치는 상호관세를 사실상 각국과의 협상 카드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월가에서는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협상 카드로 간주해 왔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보다는 미국 내 투자 확대, 교역국의 무역적자 해소 등을 위해 관세 카드를 활용했고, 어느 시점에는 관세 카드를 없앨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강경모드를 보였고, 이 같은 관측이 엇나갔다는 판단에 시장은 패닉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애초부터 유예하려고 했는지 여부는 좀 더 확인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을 제외한 각국이 전폭적으로 협상에 나섰고, 트럼프 대통령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기에 유예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현재도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유예 발표 후 각국과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발신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9일 상호관세 유예와 관련해 "각국에 대한 해법은 맞춤형으로 할 텐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 직접 참여하고 싶어해 90일 유예했다"고 설명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상호관세 유예와 관련해 "보복 대신 협력하겠다고 말하는 국가들이 아주 많다"며 "대통령은 이들 국가와 협상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