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트럼프 행정부, 관세 통한 ‘재정 문제 해결’ 주장 관세 수입도 결국 ‘수요·공급 법칙’ 적용 관세율 15% 넘으면 세수 ‘감소할 것’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관세를 정부 예산 보충 수단으로 내세운 지도 수 세기가 지났다. 미국의 비용을 해외 수출업자들이 내준다니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하지만 관세 효과는 정부 금고를 채우기 한참 전에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트럼프 행정부, ‘관세로 예산 보충’ 주장
일례로 미국 정부가 5년에 걸쳐 관세를 4배나 인상했을 때도 세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경제학 법칙이다. 무역 흐름이 관세 인상에 대응해 움직이기 때문에 관세 효과는 매우 이른 시기에 잠깐 세수를 증가시키고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서 래퍼(Arthur Laffer)는 세율이 너무 많이 오르면 세수가 떨어진다는 유명한 래퍼 곡선을 제시한 바 있는데 같은 원칙이 관세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효과는 더 크다. 근로자나 가구와는 달리 글로벌 공급망은 수년이 아니라 수 주 만에 재조정되기 때문이다.
2018년 중국산 가전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이 발효되자 기업들은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으로 하룻밤 사이에 생산기지를 옮겼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탄력적 수요(elastic demand)라고 부르는데 비용이 오르면 기업과 소비자들이 빠르게 대안을 찾는 현상을 말한다. 대응 정도가 높은 경우, 즉 탄력성(elasticity)이 1보다 높은 경우 세수는 관세율 인상을 따라가지 않고 초기에 정점을 찍은 후 하락한다.
관세율 15% 넘으면 ‘세수 줄어들기 시작’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수는 평균적으로 관세율이 15%인 지점에서 정점을 찍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상 올리면 기업들이 더욱 빠르게 움직여 정부 수입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간다는 것이다. 아시아 타임스(Asia Times)도 수익률과 환율 변동, 파급효과 등에 초점을 맞춰 10~15%라는 유사한 결론을 내놨다.
세금 재단(Tax Foundation, 미국 세금 정책을 연구) 역시 20%의 관세율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 경제 성장률 감소와 상대방의 보복 조치까지 감안할 때 10% 중반대의 세율보다 수입 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다. 어디를 봐도 관세율이 10%대를 벗어나는 순간 결과는 미국에 불리해진다.
탄력성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겠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생산된 운동화에 25%의 관세가 매겨진다고 치자. 소매업자들은 절대 관세에 맞춰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공급자나 브랜드를 교체하는 등 대안을 찾는다. 제조업체들도 최종 조립만 미국에서 완료하는 등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으려 움직일 것이다.
환율 변동도 세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달러화가 절하되면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을 일부 상쇄하게 된다. 어쨌든 기업의 수익률이 줄어들면 공급망 전체에 조정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관세 인상 속도보다 빠르게 해당 제품의 수입이 줄어 세수는 현상을 유지하거나 줄어든다.

주: 관세율(X축), 조세 수입(Y축), 높은 탄력성(1.5)(짙은 청색), 낮은 탄력성(0.5)(청색)
역사적 사실로도 ‘입증’
역사적 사실에서도 증거는 발견된다. 1930년대 악명 높은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에 따라 관세율이 가파르게 오른 후 미국 수입 물량이 1년 만에 40% 감소했다. 정부 세수도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1980년대 일본의 자국 자동차에 대한 자발적 수출 제한도 미국 정부의 세수 증대보다 훨씬 큰 소비자들의 비용 증가를 가져왔다. 2018년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도 일시적인 세수 인상이 있었지만 수입 물량이 조정되며 결국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관세를 정부 예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당국자들이 있는 듯하다. 20%의 일괄 관세 인상이 매년 6천억 달러(약 860조원)의 세수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정부 예상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이미 높은 관세율을 기록한 작년 미국 정부의 수입 증가는 860억 달러(약 123조원)에 그쳤다. 상대국 보복 조치나 경기 침체를 논하기도 전에 자릿수가 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관세 인상이 가구 소비와 기업 수익을 낮춰 다른 세수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주: 연도(X축), 조세 수입(십억 달러)(막대그래프, 좌측 Y축), 관세율(%)(선 그래프, 우측 Y축)
관세, ‘재정 정책 중심은 될 수 없어’
지지자들은 관세 인상이 세수 말고도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부흥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세로 인해 리쇼어링(reshoring, 제조 및 서비스의 자국 재이전)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는 오히려 세수 기반을 파괴하는 일이다. 외국 자동차 업체가 관세를 피해 앨라배마에 생산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더 이상 수입품에 관세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 주머니에 들어오면 다른 주머니에서 나가는 식이다.
그렇다면 현명한 관세 정책은 적정한 세율을 필요한 분야에만 적용하는 것이다. 15% 선으로 유지한다면 전반적인 공급망 변동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이면서 무역 왜곡을 바로잡는 목적이어야 하며 실시간 데이터에 따른 정기적인 조정이 따라야 한다. 희귀 광물이나 첨단 반도체 장비처럼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분야도 적정한 관세와 보조금을 섞어 지원할 일이다.
관세로 정부 지출을 충당한다는 생각은 선거 구호로는 매력적이지만 경제학적 설득력은 없다. 최근 데이터나 대공황 시기의 교훈, 복잡한 모델링 등 모든 자료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세로 인한 세수는 이른 시기 정점을 찍고 빠르게 내려간다. 적정선을 넘으면 정부는 일정한 현금 흐름을 포기하고 신기루를 좇는 셈이 된다. 관세는 무역 협상이나 전략 산업 육성 등에 유용하지만 재정 정책의 중심이 된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떠들어도 숫자는 달라지지 않는다.
원문의 저자는 사이먼 이븐셋(Simon Evenett) IMD 경영대학원(IMD Business School) 교수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ariffs cannot fund the government: Evidence from tariff Laffer curve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