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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만 파운드 이하 일자리 외면하는 英 청년들 韓도 일자리 미스매치로 청년 고용 상황 악화 유보임금 밑도는 임금 수준으로는 문제 해결 어려워

영국 청년들이 불만족스러운 임금 수준으로 인해 구직을 포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다수 청년이 4만 파운드(약 7,705만원·월 641만원) 미만의 연봉을 주는 일자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청년 실업 문제
27일(이하 현지시간) 데일리익스프레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취업 상담사 그레이엄 카울리는 24일 영국 상원에서 "온종일 인터넷에 접속하는 실업 청년들은 4만 파운드 미만 연봉으로는 일하길 거부한다"고 발언했다.
카울리의 발언에 상원 의원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카울리는 "저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며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그들에게 더 일찍 다가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런 노력은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데이비드 레너드 왓츠 영국 상원 의원은 "(젊은이들은) 어리석지 않으며, 소득이 낮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열망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며 카울리의 발언을 두둔했다.
영국 통계청(ONS)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영국의 16~24세 니트족(구직 의사가 없는 무직자)은 94만6,000명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2013년 이후 최고치다. 특히 남성 니트족이 55만 명으로 전체의 58%였다. 니트족 대부분(59만5,000명)은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이며, 실업 상태지만 구직 활동을 이어가는 청년은 39만2,000명뿐이다.

韓 청년들도 고용 시장 '줄이탈'
현재 한국 고용 시장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청년고용률은 44.5%로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실업률은 7.5%를 기록해 8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쉬었음 청년’ 인구는 45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쉬었음 인구는 실업자나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인구에서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중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으나, 막연히 쉬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임금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일자리가 줄어들며 청년들이 고용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결국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는 핵심 원인은 일자리 미스매치"라며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고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선발 인원을 줄이며 취업 문턱이 높아지자,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 청년들이 속속 구직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배경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쉬는(자발적 쉬었음) 인구의 비중은 핵심 연령층(35~39살, 20.1%)보다 청년층(32.4%)에서 높았으며, 비자발적 사유로 쉬는 청년층 인구도 주로 선호도가 낮은 300인 미만 중소기업, 대면 서비스업 등에 종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관건은 '유보임금'
이 같은 청년 실업 문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노동경제학의 '유보임금'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노동은 기업의 재화·서비스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생산 요소로써 노동 시장에서 거래된다. 노동 시장에서 기업은 수요자, 노동자(가계)는 공급자가 되고, 기업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며 이는 노동자의 소비 활동을 위한 경제적 토대가 된다.
노동 공급 규모는 노동자가 주어진 시간을 여가와 노동에 각각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시간당 임금이 상승하면 여가를 누릴 때 포기해야 하는 대가가 커지며, 노동자는 여가 시간을 줄이고 노동 시간을 늘리게 된다. 반면 시간당 임금이 하락하면 여가 시간의 가치가 커지며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
유보임금(reservation wage)은 노동자가 여가를 포기한 대가로 보상받기를 원하는 최소한의 임금을 일컫는 개념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임금 수준이 유보임금을 밑돌면 노동자는 일자리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유보임금이 높고, 여가 시간에 대한 심리적 가치가 큰 청년층을 구직 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임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청년 실업 문제가 두드러진 한국과 영국의 경우 사실상 청년층에게 유보임금 이상의 급여를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