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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금리 동결하며 실업률·인플레이션 상승 전망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본격화하며 '진퇴양난' "물가가 더 급하다" 6월 금리 동결 전망 우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동결을 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인 관세 정책이 지속될 경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며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준의 '경계 태세'
7일(이하 현지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연 4.25~4.50% 선에서 동결했다. FOMC 회의 이후 발표된 정책 결정문에는 경제 전망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더욱(further) 확대됐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가 증가했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큰 폭의 관세 인상이 지속된다면 인플레이션 상승, 성장세 둔화, 실업률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재차 강조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연준이 직접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JP모건은 "(연준이) 금번 회의에서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며 "성명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실업률 및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는' 문구를 삽입한 것이며, 이는 매파적이거나 비둘기파적인 변화가 아니라 무역 정책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나타낸 것"이라고 평했다. 다이와(Daiwa)는 "금번 정책 결정문의 추가 문구는 향후 몇 달동안 정책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FOMC가 직면한 어려운 점을 강조했으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더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어떻게 대처하나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어지며 연준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전반적·지속적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의미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가 놓였던 상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특성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면서 재정 지출을 늘렸다. 그런 가운데 1973년 10월 제4차 중동 전쟁이 일어났다. 중동 산유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에 석유 수출을 중단했고, 국제 유가는 1970년대 초반 배럴당 2~3달러에서 1980년 배럴당 3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1974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0.5%로 떨어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1%로 뛰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각국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리고 재정 지출을 줄이면 경기는 더 얼어붙는다. 반대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재정 지출을 늘렸다가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총수요 감소가 경기 침체의 원인이라면 물가 상승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총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을 통해 경기를 살릴 수 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 같은 전략을 채택하기가 어렵다.

기준금리 인하 지연될 가능성 커
시장에서는 연준이 6월에도 금리 동결을 택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물가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고, 관세 정책의 여파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큰 상황"이라며 "경기 부양보다는 인플레이션 제어에 힘을 쏟아야 할 때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 경제분석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3월 미국의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투자자들도 유사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이 금리 선물 투자자들의 통화 정책 전망을 확률로 표시한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연준이 6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할 확률은 20%로 나타났다. 이는 일주일 전(63.2%) 대비 40%p가량 급감한 수준이다. 연준이 6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은 4월 30일 32.9%에서 같은 날 80%로 뛰어올랐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이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을 지켜보겠다, 기다리겠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강조했고, 기다리는 비용이 상당히 낮다는 발언도 6월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높였다”며 “파월 의장이 선제적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던 2019년과 현재 상황이 다르다면서 가능성을 일축한 것 역시 6월 동결에 무게를 실었다”고 분석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도 “연준은 기준금리 인하 재개 시점을 6월이 아닌 7월로 미룰 것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4월 지표에서는 아직 뚜렷한 위축 징후가 나타나지 않은 만큼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