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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 부진’에 투자처 찾기 발 동동, 보험사 정체성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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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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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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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는 금융회사’ 현실로
채권 중심→주식·대체자산 확대
보유계약 만기 도래 시 수익구조 급변

보험사들이 본업인 보험 판매보다 자산운용 수익에 더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많은 보험사가 투자수익으로 실적을 방어하고 있지만, 이는 단기적인 방어일 뿐 보험 본연의 수익성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역대급 실적 또한 신계약 감소와 회계기준 변화로 머지않아 착시로 드러날 것이란 우려 또한 이어진다.

단기 실적 양호, 지속 가능성엔 의문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들은 운용 자산의 최대 20%에 달하는 국고채를 대신할 투자처 찾기에 비상이 걸렸다. 국고채는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우리 정부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정자금 운용을 위해 2006년부터 국고채 20년물을 발행해 왔다.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국고채 금리는 연 5.83%에 달했으며, 이후로도 2011년까지 연 4%대 이상의 금리를 제공했다.

이처럼 긴 운용 기간과 높은 금리 등을 이유로 국고채는 주요 보험사들의 선호 자산으로 꼽혔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년간 총 47조8,000억원 규모의 국고채가 발행됐는데, 그중 상당수를 보험사가 쓸어담듯이 인수했다는 전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를 비롯한 모든 금융사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맞추는 것”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고금리 국고채 만기가 돌아오는데, 그 정도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채권 투자 비중이 높은 보험사로는 국내 생보사 1위 삼성생명을 꼽을 수 있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투자손익은 2조2,720억원으로 전년(1조1,110억원) 대비 105.4% 증가했다. 반면 보험손익은 5,420억원으로 전년(1조4,490억원) 대비 62.6% 감소했다. 본업인 보험업에서의 부진을 투자로 만회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삼성생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생보사들은 대부분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 보험상품 판매가 부진한 반면, 자산운용을 통한 수익 의존도는 매년 높아지는 중이다. 특히 판매 채널의 디지털 전환 지체, 젊은 층의 보험 기피 현상 등 구조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본업에서의 성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의 위험을 관리하는 본연의 역할보다 투자로 자산을 불리는 여타 금융사들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통적 보험상품 수요 감소는 공통적 흐름

보험사의 투자 중심 경영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슈로더가 전 세계 23개국 205개 보험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향후 2년 이내 글로벌 주식 상품 배분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이들 응답자의 상당수는 액티브 투자 확대를 적극 고려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 평균보다 높은 수익률을 창출하고자 하는 투자를 의미하는 액티브 투자는 장기적이고 꾸준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패시브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 방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보험 산업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선진국일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컨대 독일의 알리안츠나 미국의 푸르덴셜 같은 보험그룹은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주식 비중 확대와 부동산·인프라 펀드 투자를 강화해 왔다. 이는 고금리 환경에서 채권만으로는 목표 수익을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채권 수익률은 꾸준한 수익이 보장되지만, 시장 전체 수익률 상승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주식과 리스크 자산 쪽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문제는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 전략이 보험사 고유의 안정성과는 상충한다는 사실이다. 주식은 채권에 비해 수익 변동성이 크고, 실현손익과 평가손익 간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회계 및 리스크 관리 부담이 크다. 특히 외부 충격 발생 시 자산가치가 급락하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선 충당금 확대와 추가 자본확보 등 대응이 필요하지만,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투자 수익에 집중하는 동안 안정적인 리스크 관리 모델을 유지하는 보험업의 정체성과도 같은 역할은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신계약 마르면, 곳간도 ‘텅텅’

최근 보험사들의 실적 발표에서는 ‘역대급 흑자’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화손보는 올해 1분기 보험손익이 전년 동기 대비 63% 오른 1,494억원을 기록했으며, 현대해상 역시 같은 기간 50% 넘게 뛴 4,77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생보사들 역시 대부분이 시장의 실적 추정치(컨센서스)을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실적에는 구조적 착시가 숨어 있다. 핵심은 IFRS17 회계기준이다. 2023년 도입된 해당 기준은 보험사의 실적을 ‘현금 유입’이 아닌 ‘계약 가치’를 기반으로 계산한다. 초기 신계약이 많을수록 장기적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현재 가치로 평가해 수익으로 인식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단기 손익은 크게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계약이 꾸준히 증가한다는 가정이 있어야만 유효한 계산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고령화한 기존 고객의 계약은 만기를 향해 가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보험 가입률은 계속 하락 중이다. 이처럼 신계약이 줄어들면 회계상 인식되던 이익은 자연스럽게 축소되고, 당장 몇 년 후부터는 ‘곳간이 비는’ 현실이 실적에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 현재 IFRS17 기준으로 보는 실적 호조를 두고 “길어야 5년”이라는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장부상 이익은 5~10년짜리 계약의 미래 가치를 미리 끌어온 결과인데, 향후 신계약이 계속 부진하다면 5년 후에는 가져다 쓸 이익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맴도는 보험 영업이익과 줄어드는 이자수익, 변동성에 취약한 투자 수익 등 지금과 같은 자산 구조에서는 보험사들의 ‘역대급 실적’은 곧 허상이 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주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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