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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제조업, 美 관세 피해 우회 수출 베트남·멕시코·이집트 이전 모색 대미 수출 막힌 데다 내수 침체 겹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고율 관세 조치가 이어지자, 중국 제조업체들이 베트남과 멕시코를 넘어 이집트 등 제3국으로 생산지를 옮기며 우회 수출에 나서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강력한 내수 확대 정책으로 맞대응에 나섰지만, 소비 위축과 경기 둔화로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이 더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유화학부터 제조업까지 '우회 수출' 모색
7일(현지 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수출업체들이 관세를 피해 미국 고객에게 계속 물건을 판매하고자 새로운 해결책 마련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국 관세를 피해 이집트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저장성의 볼펜 제조업체 베이파(貝發) 그룹의 사례를 소개했다. 중국 최대 문구회사 가운데 하나인 베이파는 매출의 40%를 미국 수출로 올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석유화학 제품부터 기념품 제조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 동부에서 기념품 사업체를 운영하는 라이언 저우는 미국의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텍사스 주 댈러스에 새로운 공장을 설립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주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관세를 회피하지 않고서는 사업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저우와 마찬가지로, 많은 중국 제조업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에 대응하여 미국 내 생산 시설 설립을 조용히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최고 145%까지 인상하자, 중국 역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양국 간 무역 갈등은 격화되고 있다. 특히 소량 배송에 대한 면세 혜택 폐지가 중국의 대미 수출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멕시코 등 중국 우회 수출지로 활용
2018년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품목을 한정해 진행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2기 들어 전 세계 모든 품목으로 확대된 배경에는 중국의 ‘우회 수출’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회 수출이란 특정 상품의 규제·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제3국으로 해당 상품이나 부품・요소를 수출해 가공한 후 원산지를 변경해 제재 시행국으로 수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대표적인 관세 우회 수출지는 베트남과 멕시코가 꼽힌다. 2019년 베트남을 경유한 중국의 대미 수출액 40억8,000만 달러로 전년(15억7,000만 달러) 대비 160% 급증했다. 멕시코를 경유한 중국의 대미 수출액도 2018년 53억 달러에서 2022년 105억달러로 98% 증가했다. 2018년 관세 발효 이후 중국에서 반쯤 만들어지고 베트남과 멕시코에서 최종 생산된 제품이 늘어난 것이다.
베트남과 멕시코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크게 늘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기 전인 2017년 27.5%였던 베트남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2021년 33.2%로 증가했다. 멕시코의 대중국 수입 비중 역시 같은 기간 17.6%에서 20%로 커졌다. 이 기간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율은 약 7% 줄었으나 베트남과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비율은 각각 100%, 16% 늘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4개 국가에서 생산하는 태양광 패널에 최고 271.2%의 반덤핑 예비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태양광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웨이퍼와 셀을 동남아로 옮겨 모듈로 만든 후 미국으로 수출하는 식으로 관세를 우회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미국 태양광 시장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中, 강력한 소비 활성화 조치에도 내수 침체 이어져
일각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발 관세 전쟁에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승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승리’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국내총생산(GDP)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모두 미미한 것을 이유로 꼽는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액(4389억달러)은 중국 GDP(17조 7900억달러·IMF 자료) 대비 2.5% 수준이다. 중국 총수출에서 2018년 19.2%이던 대미 수출 비중은 지난해에 14.7%로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성장 기여도가 45%에 달하는 국내 소비를 5~10%만 올리면, 미국이 대중(對中) 관세를 100% 넘게 부과해도 대미 수출 감소 충격을 이겨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중국 당국도 미·중 대결 구도 속에 ‘내수 진작’을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 지난달 폐막한 양회(兩會) ‘정부 업무 보고서’에서는 ‘소비(消費)’라는 단어가 32차례 등장했다. 지난달 17일 중국 국무원은 자동차·가전제품·스마트폰 구매 보조금 확대 같은 30개 항목의 ‘소비 진흥을 위한 특별 행동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개혁·개방 조치 후 가장 광범위한 소비 활성화 조치로 평가 받는 이 대책은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소비가 더 위축된 탓이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를 보면 올해 3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월(-0.7%)에 이어 3월(-0.1%)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월간 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계속 하락했다. 작년 3월부터도 0%대에 머무는 극심한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CPI의 선행 지표인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도매물가 지수)도 지난달까지 30개월 연속 하락 행진을 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총무역흑자의 30%에 해당하는 돈(2954억 달러·약 429조원)을 벌었다.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14.7%)과 비교하면 두 배 정도 규모이다. 중국 역사상 단일 국가를 상대로 가장 많은 무역 흑자를 미국에서 올린 것이다. 고율(高率) 관세로 ‘알토란’ 같은 미국 수출 시장마저 끊어질 경우, 중국이 받게 될 타격은 훨씬 크고 뼈아플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