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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운송업체, 美 기업에 환적 부정 등 권유 일부 기업은 퍼스트 세일 룰 활용해 비용 절감하기도 韓 정부, 덤핑방지부과관세 회피 집중 단속 나서

미국 기업들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환적(換積·trans-shipment) 부정 등 불법 행위를 저질러 관세 부담을 경감하거나, 미 세관법에 명시된 퍼스트 세일 룰(First Sale Rule)을 활용해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식이다.
중국發 '관세 사기' 속출
27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몇 달 동안 관세를 올림에 따라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관세 회피 수단을 알려주겠다는 이상한 유혹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모든 나라에 10%의 기본 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를 부과했으며,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에 25%의 품목별 관세를 적용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중국 운송 회사들은 의류, 자동차 부품, 보석 등을 수입하는 미국 업체에 접근, 관세를 줄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환적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관세 비용을 절감하도록 유도하고, 그 대가로 추가 수익을 챙기는 식이다. 환적은 선박에 실린 화물을 목적지로 바로 보내지 않고 특정 국가의 항구에서 다른 선박에 옮겨 싣는 것을 일컫는다. 미국이 국가마다 다른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관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환적 부정(환적항을 원산지인 것처럼 속이는 것)을 하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꼼수'를 활용해 관세 납부를 회피하는 기업들이 늘자, 미 정부는 관세 회피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환적 부정이 자주 발생하는 베트남,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자체 단속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미 정부가 급증하는 관세 사기를 완벽하게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샬럿 파이프 앤 파운드리사 브래드 뮐러 부사장은 "현재의 관세 제도는 사기에 매우 취약한 상태”라며 “(미 당국이) 우회 수출 중국 회사들을 찾아내 폐쇄하면 곧바로 새 유령 회사가 등장하는 '쥐 잡기 게임'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美 기업들의 관세 우회법
일부 미국 기업들은 환적 부정 등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대신 ‘퍼스트 세일 룰’을 적극 활용해 관세 리스크를 상쇄하기도 한다. 퍼스트 세일 룰은 1988년부터 존재해 온 미국 세관법 조항으로, 수입자가 동일 물품에 대한 거래 중 첫 번째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관세를 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공장에서 만든 티셔츠가 5달러(약 7,000원)에 홍콩 중간 유통업자에게 판매된 뒤 10달러(약 1만4,000원)에 미국으로 재판매된 경우, 미국 세관은 기본적으로 10달러를 기준점 삼아 관세를 매긴다. 그러나 퍼스트 세일 룰을 적용하면 최초 판매가인 5달러 기준으로 관세를 산정할 수 있다. 중간 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마진이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단 해당 제도를 활용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해외 생산자와 중간 판매자 간 최소 두 건 이상의 독립된 판매가 있어야 하며, 이 거래들이 서로 무관한 제3자 간의 정상적인 거래라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또 해당 물품이 미국 수입용이라는 사실과 최초 판매 가격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구비해야 한다.

"덤핑 수출 온다" 韓 경계 태세
수많은 기업이 관세 부담을 줄이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한국을 '우회 수출로'로 활용하려는 주변국을 경계하고 나섰다. 관세청은 지난달부터 덤핑방지관세 부과 대상 품목에 대한 불법 회피행위를 집중 점검하는 일제 단속에 착수했다. 이번 점검은 7월 22일까지 이어지며, 점검을 위해 본청 공정무역심사팀과 서울·부산·인천세관 등 4개 세관 심사팀에서 38명으로 구성된 ‘반덤핑 기획심사 전담반’이 투입된다. 덤핑방지관세는 수입 물품의 가격이 공급국 내 통상 가격보다 현저히 낮아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경우, 그 차액을 기본 관세에 추가로 부과하는 조치다.
관세청은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으로 인해 △덤핑방지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국가를 경유한 우회 수출 △낮은 덤핑방지관세율이 적용되는 공급사의 명의를 이용한 허위 신고 △덤핑방지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품목 번호·규격으로 수출 신고 △가격 약속 품목의 수입 가격 조작 등 다양한 불법 회피 행위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관세청은 덤핑방지관세 부과 품목을 거래하는 업체의 수출입과 외환 거래 내역·세적 자료 등을 분석해 위법 행위 가능성이 높은 우범 업체를 선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관세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 회피 사실이 드러날 경우 미납세액이 추징되며, 관세 포탈 등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 등 엄중한 처벌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