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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트럼프 "푸틴이 많은 사람 죽여" 맹비난 英·佛 등 유럽 정상들도 러시아에 휴전 압박 獨 휴전 거부 시 우크라 군사 지원 확대 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동시에 압박하며 전쟁 종식을 촉구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 푸틴을 향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고, 유럽 정상들은 조건 없는 즉각 휴전을 제안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군사 지원 확대와 제재 강화를 경고했다.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국제사회가 푸틴 정권을 향한 전방위 외교·군사 압박에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 푸틴의 우크라 대규모 공습 직격
27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현충일 연휴 기간 뉴저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푸틴 대통령을 오래전부터 알아 왔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 같다"며 "그가 무슨 일에 휘말렸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날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푸틴은 이유도 없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과 드론을 퍼붓고 있다"며 "그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원한다고 늘 말해왔고,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난 25일 자정 무렵 우크라이나 전역에 드론과 순항미사일 수십 기를 발사하며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단행했는데 이날도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27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지금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며 감정 과잉으로 인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감정적 대응으로 몰았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자주 강조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복귀하면 ‘24시간 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취임 넉 달 만에 러시아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감행하며 트럼프의 낙관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야 푸틴이 평화를 원한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달은 것 같다"며 “협상을 원한다면서 동시에 공습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럽 정상들도 푸틴 규탄에 뜻 모아
유럽 역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등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키이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에 대해 오는 12일부터 30일간 육해공 전역에서의 무조건적 휴전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스타머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5개국이 조건 없는 휴전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미국과 함께 푸틴 대통령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미국 주도로 모든 유럽 국가가 참여해 휴전 협정을 준수하는지 감시하겠다"며 미국과의 연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휴전으로 강력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즉각적인 협상의 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유럽 정상들은 만약 러시아가 제안을 거부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미국과 함께 에너지·금융 부문에 대한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유럽 정상들의 30일 휴전 제안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서방의 추가 제재 위협과 관련해 "우리는 유럽에서 많은 모순적 발언을 듣고 있다"며 "대체로 관계 복원을 시도한다기보다 대결 지향적"이라고 지적했다.
獨, 우크라 장거리 무기 지원 확대 시사
유럽은 대러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26일 메르츠 총리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로파포럼 행사에서 “우크라이나에 제공되는 무기에는 더 이상 어떤 사거리 제한도 없다”며 “영국, 프랑스, 독일과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군사 진지를 공격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제 지원 무기의 장거리 제한 해제와 관련해 유럽 동맹국들이 어느 수준까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지는 불분명하다. 특히 독일이 금기시했던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우러스'를 지원할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메르츠 총리는 자신의 X 계정에 “앞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며 “우리가 공급하는 무기에 대한 사거리 제한이 더이상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지원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다.
메르츠 총리의 발언이 공개된 뒤 독일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집권 연립 여당인 녹색당의 아그니에슈카 브루거 부대표는 “논리적이며, 더 일찍 나왔어야 할 발언”이라고 환영했지만, 사회민주당과 좌파당 등에서는 전쟁 확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에 따르면 사민당 소속 랄프 슈네그너 의원은 “전쟁을 확대시키는 조치는 무엇이든 잘못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