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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동차정책위원회, 美·日 무역 협상 결과에 반발 "우리도 부품 관세 시달리는데" 日 대비 가격 경쟁력 저하 우려 韓·美 협상 테이블에도 '자동차 관세' 오른다?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일본의 무역 합의에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품목관세율이 인하될 경우 자국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디트로이트에 감도는 긴장감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날 미국은 일본과의 무역 협상에서 자동차 품목관세율을 기존 25%에서 절반 수준인 12.5%까지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뒤 일본 증시에서 도요타 주가는 약 14% 급등하며 15년 만에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했고, 혼다 주가도 11% 이상 올랐다. 시장이 양국이 도출한 결론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한 셈이다.
반면 디트로이트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자동차와 스텔란티스를 대표하는 로비 단체 미국자동차정책위원회의 맷 블런트 대표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차량에 미국산 부품이 거의 없는 반면, 북미에서 생산된 차량은 미국 부품 비중이 높다"며 "일본산 차량에 더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것은 미국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매우 안 좋은 합의”라고 지적했다. 품목관세율 하향이라는 호재를 등에 업은 일본 완성차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디트로이트 3사가 관세율 조정에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들 기업 역시 품목관세 부담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상당량의 차량을 해외 생산 기지에서 생산해 수입하고 있다. 일례로 GM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약 절반을 수입한다. 스텔란티스는 고수익 라인업인 램 픽업트럭을 멕시코에서, 크라이슬러 퍼시피카 미니밴을 캐나다에서 각각 공수하고 있다. 포드는 인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브롱코스포츠를 멕시코에서 생산한다.
美 자동차 업계, 부품 관세에는 '난색'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일본의 완성차 관세율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디트로이트 3사가 트럼프 행정부의 '부품 관세'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미국 완성차 및 부품 업계를 대표하는 6개 단체는 상호 관세 부과가 본격화한 지난 4월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에 관세 조치를 완화해달라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당시 단체는 "대부분의 업체는 갑작스러운 관세로 인한 혼란에 대비할 수 있는 자본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많은 업체가 생산 중단, 근로자 해고, 파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미국을 위주로 한 공급망 재편에는 동의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을 하루 만에 또는 몇 달 만에 재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양면적 태도가 '자국 우선주의'에서 기인했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미국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 외국산 완성차에 대한 관세 부과는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고,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며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비용 부담에 짓눌리며 미국 시장 내 가격 인상을 택하면 디트로이트 3사의 입지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반면 부품 관세는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하는 디트로이트 3사에도 명확한 악재로, 사실상 지지할 명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불안이 가중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자동차 제조 업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4월 말 자동차 부품 관세를 일부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만든 차량에 한해 올해 차량 가격의 15%, 내년 차량 가격의 10%에 대해 각각 부품 관세 부담을 한시적으로 줄여주기로 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온다. 완화 조치가 종료되는 2027년 5월 1일부터는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를 그대로 부담해야 하는 만큼, 중장기적인 관세 압박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韓 자동차 관세도 인하될까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 외 국가와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품목관세 인하를 결정할 경우, 디트로이트 3사와 미국 정부의 충돌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자동차를 포함한 15% 관세율 도달을 목표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산 농산물이나 항공기 등을 추가 구매하는 조건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같은 논의가 순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는 25일 예정돼 있던 양국 협상이 돌연 취소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24일 오전 9시 28분 언론 공지를 통해 “미국과 예정됐던 25일 ‘2+2 협상’은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인해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협상에는 한국 측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측 베선트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미국 측의 취소 통보는 구 부총리의 출국을 불과 1시간25분 앞둔 오전 9시쯤 이메일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구 부총리는 긴급 연락을 받고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재부는 “미국 측은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을 다시) 개최하자고 제의했고, 한미 양측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며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미안하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갑작스러운 협상 무산 소식을 접한 시장은 미국이 유럽연합(EU)·중국과의 협상에 집중하면서 한국이 협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비관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