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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韓·中 대상 철강 관세 연장 韓 정부도 철강 반덤핑 조사에 박차 관조적 태도 유지하던 日, 보호무역 전환 가능성 열어둬

글로벌 철강 시장에 균열이 일고 있다. 신중한 경제 외교 전략을 유지하던 동북아시아 주요국들이 관세, 쿼터제, 반덤핑 조사 등을 앞세워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저가 수입에 대한 방어 조치가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역내 경제 분절화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가 철강 경계하는 대만
2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대만은 지난 3월 중국·한국산 스테인리스 강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 조치를 추가로 5년 연장했다. 중국이 대량의 저가 철강을 시장에 쏟아내며 업계 혼란을 가중하자, 국내 산업 기반을 ‘약탈적 가격’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산 철강에는 최대 38.11%, 한국산 철강에는 최대 37.65%의 관세가 유지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고율 관세로 인해 중국산 철강이 대만산으로 ‘세탁’돼 다른 나라의 관세를 회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대만의 철강 무역 장벽이 일관적인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은 사실상 낮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철강 관세는 자그마치 10년 이상 지속돼 온 자국 철강 산업을 지키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각종 변수로 인해 철강 수요와 가격이 출렁이는 가운데, 이 같은 대만의 장기적인 보호 기조는 역내 철강 시장에 전략적 안정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
韓도 철강 반덤핑 '경계 태세'
한국 정부도 무역 방어 조치 강화를 검토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지난 2월 중국 업체들의 저가 제품 밀어내기 공세가 심각하다고 판단, 중국산 후판에 최고 38.02%의 잠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철강 품목에 부과하는 반덤핑 관세로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어 4월에는 베트남산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제품에 대해 최대 18.8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의결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중국산 스테인리스스틸 후판에 향후 5년간 21.6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4일에는 ‘일본 및 중국산 탄소강 및 그 밖의 합금강 열간압연 강판’ 덤핑 조사에 대한 예비 판정이 진행됐으며,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최고 33.57%의 잠정 반덤핑 관세 부과가 심의·의결됐다. 이는 앞서 현대제철이 일본·중국산 열연강판 제품이 국내 시장에 저가로 대량 유입돼 시장 교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덤핑 조사를 신청한 데에 따른 조치다. 무역위는 지난 3월 정식 조사에 들어간 이후 국내외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자료를 제출받고 업계 의견을 청취해 왔다.

日, 인플레이션 압박에 태도 전환
일본 역시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대만이나 한국처럼 강력한 조치를 취하진 않았지만, 자국 우선 조달과 가격 통제 강화를 통해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껏 관조적 태도를 고수하던 일본이 돌연 노선을 전환한 것은 금속 등 산업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며 인플레이션이 꿈틀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5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3.7%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향후 일본이 철강 제품에 직접 관세를 부과하거나 간접적 산업 보호 조치에 나설 경우, 동북아 철강 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뒤집힐 수 있다. 일본을 시작으로 각국이 경제적 국경을 줄줄이 강화하고, 열려 있던 무역 통로가 관료주의와 정책 마찰의 '병목' 구간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아시아 철강 강국들이 보호무역주의를 택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들 국가의 전략이 철강 시장에 가져올 결과는 사실상 동일하다.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아시아 철강 벨트를 따라 이어지던 자유로운 무역 흐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아시아 철강 시장의 공동 성장의 시대가 저물고 자국 생존과 주권 수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