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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 유네스코 탈퇴 선언한 미국, 깊어지는 이념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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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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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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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년 만에 유네스코 재탈퇴 선언
다자주의에 대한 거부감 뚜렷해져
“장기적 관점에서 외교적 손실” 비판도

국제연합(UN) 산하 문화·교육 기구인 유네스코(UNESCO)와 미국의 관계가 또다시 단절되면서 익숙하면서도 충격적인 장면이 반복됐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는 이번이 세 번째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이념적 과잉’에 대한 저항으로 포장했다. 전 세계가 문화와 환경, 교육 등 다층적 과제에 직면한 현시점에서 미국의 이탈은 다자 외교의 후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유네스코는 유감 표명하며 결속 호소

24일(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미국의 탈퇴 발표 직후 “이는 수십 년간 쌓아온 문화 협력의 기반을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유네스코는 지금까지 미국의 리더십 아래 교육 증진, 유산 보호, 표현의 자유 확대 등 여러 방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 왔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 문화 정체성의 침식, 기후 교육의 부재 등 전 세계적으로 공조가 절실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미국처럼 영향력 있는 국가의 이탈은 국제적 대응력을 약화시킨다는 게 아줄레 총장의 지적이다. 그러면서 아줄레 총장은 유네스코가 분열보다 대화를 통해 성장해 왔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미국의 내정 논리가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할과 점점 더 충돌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대변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탈퇴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들을 주목했다. 그간 미국은 자금 지원뿐 아니라 지적·기술적 리더십 면에서도 세계유산 보호, 문해력 증진 등 주요 유네스코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지원이 끊기면, 사업 추진이 지연되거나 차질을 빚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아가 여타 회의적인 국가들의 ‘탈퇴 도미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가주의 내세운 탈퇴의 반복

외신은 이번 결정을 미국 내부적으로 이미 수년간 누적돼 온 이념적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봤다. 프랑스24는 “트럼프 행정부는 유네스코가 점점 ‘진보적’, 즉 보수 진영이 비판하는 ‘각성(woke)’적 의제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을 탈퇴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고 전하며 “탈식민주의 교육, 포용적 언어 사용, 소수자 유산에 대한 보호 같은 주제들이 문화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반감을 야기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이번 탈퇴 소식을 알리면서 유네스코가 더는 자국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다며 특히 성소수자 정체성과 인종 기반 교육 개편, 세계사 서술에서의 정치적 편향 문제 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같은 태도는 국제기구가 미국 내 대다수 유권자의 세계관과 상충하는 이념을 확산한다고 믿는 세력과 궤를 같이한다.

일부 비판론자는 미국의 주장이 매우 편협하면서도 위험한 접근이라고 반박했다. 유네스코는 물리적 문화유산 보호를 비롯해 과학 협력 증진, 문해력 향상과 지속 가능한 개발 지원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실질적인 국제 협력을 이념 논쟁으로 단순화할 경우, 미국은 다양한 의제를 지닌 국가들에 국제적 영향력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탈퇴에 따른 파장 또한 유네스코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반복은 UN 체계를 포함한 국제사회 전반에서 미국의 신뢰도와 위상을 손상시키고, 그 빈자리를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에게 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들 국가가 과거 미국이 주도해 온 플랫폼에서 자신들의 서사를 강화하려는 전략을 공공연히 펼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트럼프와 유네스코의 악연, 미국 외교의 향방은?

트럼프 대통령 체제로 범위를 좁혀도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는 벌써 두 번째다. 그는 1기 집권 당시인 2017년에도 편향성과 비효율성을 이유로 탈퇴를 단행한 바 있다. 이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2023년 재가입을 결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2년 만에 재철수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국제기구 참여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제는 유네스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신이 다자기구 전반에 대한 회의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랜 시간 기후변화 협약과 난민 협정, 국제 보건 협력 등 거의 모든 형태의 글로벌 연대를 자국 이익을 침해하는 ‘인도주의적 과잉’으로 치부해 왔다. 다자 협력이 국가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강한 경계를 드러내는 식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에는 본질적인 위기로 작용한다.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재정과 외교 전략 양측에서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향후 유네스코 리더십의 축이 유럽 또는 아시아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반복되는 미국의 이탈이 기구 전체의 결속력을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짙어지고 있다.

미국 내 진보 진영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국제기구의 인도주의적 사명 자체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육 격차 해소와 문화유산 보호, 국제 과학 협력 등을 외면하는 이번 결정이 종국에는 미국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오랫동안 쌓아온 글로벌 리더십의 기반마저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네스코 탈퇴는 단순한 행정 절차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외교 정책이 점점 내향화되고 있으며, 이념적 순수성이 협력적 문제 해결보다 우선시되고 있다는 신호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를 ‘각성주의에 맞선 결연한 대응’이라 평가하지만, 반대로 국제무대 내 미국의 책임 회피인 동시에 외교적 무관심의 표현이라는 반론 또한 거센 상황이다. 향후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오랜 시간 민주주의 확립에 앞장서 온 미국이 공동의 플랫폼에서 등을 돌리는 장면은 전 세계인의 뇌리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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