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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요금 4차례 인상, 2년 새 70% 급등 SK어드밴스드도 올해 3월 전력 직구 승인 받아 철강업계·한화솔루션·코레일 등도 탈한전 검토

LG화학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전력을 직접 구매하는 첫 번째 기업이 됐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2년 새 70% 급등하면서 한전을 통하지 않고 전력을 직구하는 것이 저렴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상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석유화학과 철강업계를 중심으로 전기를 싸게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탈(脫)한전’ 흐름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형 전력 소비 기업 대상 '전력 직구 제도' 도입
24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달 말부터 전력 직접 구매 제도를 통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전력을 직접 구매하고 있다. 이 제도는 대용량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이 한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지 않고 직접 전기를 구입해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3월, 수전설비 용량이 3만킬로볼트암페어(㎸A) 이상인 대형 전력 소비 기업에 한해 이 방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편했다.
LG화학은 전력 직접 구매 제도를 실제로 이용한 첫 번째 대기업 사례로 주목받는다. LG화학에 앞서 지난 3월 SK어드밴스드가 산업부 전기위원회에 전력 직접 구매를 신청해 승인을 받은 바 있다. 다만 관련 시스템 구축, 인프라 설치 등 현재 현장 적용단계에 있어 구체적인 적용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기업은 물론 코레일 등 공기업 등도 직구 제도 활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화학업계, 전기요금 납부액 36.4% 늘어
국내 첫 전력 직구 사례가 나오면서 비싼 전기요금을 피하기 위한 '탈한전'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업용 전기요금이 네 차례에 걸쳐 인상됐고, 그 결과 대기업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은 2년 새 70%가량 급등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요금 상승률(37%)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사회적 갈등을 우려해 가정용 요금 인상은 최소화하고, 상대적으로 조정이 쉬운 산업용 요금을 연이어 올린 결과다. 이로 인해 현재 산업용 요금이 전력거래소의 전기 도매가격(SMP·계통한계가격)을 크게 웃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기업들이 전력 사용을 줄였지만, 한전의 전기 판매 수입은 오히려 증가했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5월 한전의 산업용 전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판매 수입은 7.2% 늘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부담만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철강·화학 등 전기요금 민감 업종 112개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평균 전기요금 납부액은 2022년보다 36.4% 늘었다. 매출액 대비 전기요금 비중도 같은 기간 7.5%에서 10.7%로 상승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최근 석유화학업계와 전남 여수산업단지 입주사 등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한시적으로 10~12% 인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정기획위원회와 산업부 등 정부 측은 전기료 인하가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화학 기업들은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력을 구매하고 한전에 망 이용료만 납부하는 방식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화학산업협회 등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이 전력 직구를 활용할 경우 킬로와트시(kWh)당 30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한전 본격화하면 한전 고객사 25% 감소 전망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해 정부는 전력 직구 제도 관리 강화를 위한 조치에 나섰다. 산업부는 지난 4월 관련 규칙을 개정해 최소 계약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최대 9년간 직구 재진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기업들이 유불리에 따라 전력 '직구'와 한전을 손쉽게 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처럼 정부가 제도 계약 기준을 강화했지만, 희망 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한전 고객사의 최대 4분의 1 정도 빠져나가 한전 매출은 최대 16조원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추산한다.
전력업계에서는 한전 판매가격이 SMP보다 높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석유화학은 물론 철강기업까지 전력 직구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비용이 전체 생산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철강기업의 경우 전기요금 절감으로 생산 비용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에서는 전기료가 1kWh당 1원 오를 경우 연간 원가 부담이 2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가령 전력비용이 전체 제조비용 에서 30%를 차지한다는 전제하에 전기요금이 20% 절감되면 전체 생산비용의 약 6%가 절감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해 전기로 제강 7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1%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력비용 절감으로 수익성 개선 성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건설경기가 침체가 장기화하고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전기로 제강사들이 감산을 진행하고 있고, 생산도 전기료 절감 차원에서 야간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력 직구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또한 직구를 통해 전력비용을 보다 예측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어 재무계획 수립의 안정성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