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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전략 이탈, 실용 외교로의 전환 대중 수출 유지, 대미 안보 협력 약화 중국 전략 공간 확대, 억지 구도 흔들림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5년 3월 31일, 중국군은 전투기 80여 대와 군함 10척을 동원해 대만을 포위하는 실사격 훈련 '해협 천둥(Strait Thunder)-2025A'를 실시했다. 이후 48시간 동안 대만 국방부는 전투기 59대와 함정 23척이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으며, 이 중 18대는 중국이 더는 인정하지 않는 해협 중간선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 훈련은 당시에 중동 원유 위기와 국내 경제 이슈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단순한 무력시위를 넘어 동북아 안보 구도에 균열이 발생했을 때 중국이 얼마나 빠르게 이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작용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 전달된 메시지는 억지력이 더 이상 공고하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지역 축’에서 ‘실용 외교’로 전환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 시절 본격화된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선을 긋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한국의 전략적 역할을 한반도에서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하며 나토와 협력을 강화했지만, 이 대통령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는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대신 문재인 정부 시기의 신북방·신남방 정책 복원을 예고하며,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피하고 외교적 접점을 다시 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에 무게를 싣는 방향 전환이다.
이 같은 기조는 유권자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2025년 1월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진보층의 44.6%는 남북 교류 확대를 지지한 반면, 미국 동맹 강화를 우선순위로 둔 비율은 26.6%에 그쳤다. 보수층은 그 반대였다. 정부는 이를 '긴장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석하지만, 양극화된 여론은 외부 세력, 특히 중국이 외교적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단순한 표현상의 변화가 아니다. 한국 안보가 대만 해협과 연결돼 있다는 기존 억지 구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적 파장이 크다. 중국으로서는 대만 봉쇄 시나리오를 점검할 때 한국의 대응 부담이 줄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수치로 드러나는 균형 변화
2025년 5월, 한국의 대중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4% 줄어 104억달러(약 14조1,000억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5%를 차지하며, 미국보다 4% 높은 비중을 유지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 의존도가 두드러진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420억달러(약 193조원) 규모로, 최대 수요처는 중국이다.

주: 2023년 5월 및 2025년 5월(X축), 수출 비중 및 수출액(Y축)/중국 수출 비중(진한 파랑), 미국 수출 비중(중간 파랑), 한국 총수출액(연한 파랑)
한편 중국은 같은 해 3월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7.2% 늘린 1조7,900억 위안(약337조원)으로 편성했다. 이는 10년 연속 이어진 단일 자릿수 증가세지만, 누적 규모는 상당하다. 한국 정부 예산은 673조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국방 예산은 61조2,000억원(약 460억달러)으로 늘었다. 이는 GDP의 2.3% 수준이며, 미한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pecial Measures Agreement, SMA)에 따라 미국이 부담하는 14억7,000만달러(약 1조9,800억원)도 재협상 대상에 포함돼 있다. 미국이 방위비와 통상 이슈를 연계하려는 움직임까지 고려하면, 협상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의 경제 기반은 여전히 중국에 기울어 있고, 반면 안보 기반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대만 해협은 서울의 사각지대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 탱크 제임스타운재단에 따르면, 중국군은 2024년 한 해 동안 대만 해협 중간선을 3,070회 넘었으며, 이는 전년도 1,703회보다 급증한 수치다. 2025년 1월에는 한 달간 248회의 침범이 이뤄져 월간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군사 활동은 대만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대응 체계를 자극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전략적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이다. 공중 수송, 급유, 지휘통제 등 작전 기반에 있어 주한미군과의 협력은 동북아 안보에 핵심적이다. 그러나 한국이 역내 협력에서 거리를 둘 경우, 북방 작전 축의 기지 활용도는 낮아지고, 연합군의 감시·정찰 범위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군사 작전에서 시간과 공간의 이점을 확보하게 된다.

주: 연도(X축), 중국군 항공기 침범 횟수(Y축)
일각에서는 한국이 거리를 두는 대신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중재는 당사국 모두가 위기를 동등하게 인식할 때만 가능하다. 중국은 한국 공군이 대만보다는 한반도 작전에 집중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이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고사한 것 역시 민감한 안보 이슈에 대한 거리두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 여부와 관계없이 중국의 행동 계산에 영향을 미친다. 반복되는 무력시위는 무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
실용주의자들에게 보내는 반론
실용 외교 노선을 지지하는 측은 중국과의 협력이 공급망 압박에 대한 한국의 취약성을 줄이고, 북한·러시아와의 외교 채널도 열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의 나토 회원국 대상 무기 수출은 2024년 140억달러(약 19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단기간에 급감할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경험은 경제적 얽힘이 지정학적 충격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대중 수출은 1년 만에 26% 급감했다. 대만 해협에서 봉쇄 사태가 발생할 때 해상 보험료는 폭등하고, 그 파장은 훨씬 더 클 수 있다. 특히 대만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은 즉시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수출 통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보호하려 했던 현금 흐름은 곧바로 막히게 된다.
해협이 벌어지기 전, 간극부터 메워야
짧은 훈련도 주변국의 전략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장기화되면, 인식 변화가 현실 구도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국방 예산도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동맹국이 발을 뺄수록 중국은 더 과감하게 행동할 여지를 얻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용이냐 동맹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선택이 아니다. 외교적 관여를 주도적으로 조율할 것인가, 외부 압력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인가의 문제다. 전략적 후퇴가 전략적 항복으로 굳어지기 전에, 정상회의 참석 여부, 예산 편성 방향, 외교적 메시지 하나하나에 억지력의 생사가 달린 지금, 한국은 방향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eoul’s Strategic Sidestep: How South Korea’s Retreat Reshapes Indo‑Pacific Deterrence and Empowers Beijing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