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준 장악’ 초읽기, 쿡 이사 후임에 ‘親트럼프 인사’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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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미란·데이비드 멀패스 등 후임 거론 리사 쿡 이사, 주담대 사기 혐의 '해임 통보' 트럼프, 해고 성공 시 이사 7명 중 4명 지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 리사 쿡의 해임을 추진하며 후임 인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인선 논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구조를 재편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수개월간 이어져 온 연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것과 동시에 쿡 이사 자리에 친(親)트럼프 인사를 배치하려는 의도란 분석이다.
쿡 이사 후임으로 미란·멀패스 물망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의 후임으로 경제 고문 스티븐 미란과 전 세계은행(WB) 총재 데이비드 멀패스를 유력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매우 훌륭한 인재들이 있다"며 "미란을 쿡의 자리에 임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쿡 이사를 겨냥해 “(법) 위반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래선 안 된다”며 “그가 주택담보대출을 담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택금융청이 쿡 이사에 대한 두 건의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포착해 법무부에 수사 의뢰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우리는 곧 (연준에서) 다수를 갖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다수를 확보하면 아주 훌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연준 이사회는 7명으로 구성되며, 여기에 지역 연은 총재 5명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참여해 총 12명이 금리를 결정한다. 이사회 7명 중에서 현재 2석이 공석으로, 쿡 이사까지 해임되면 트럼프가 3석을 새로 채울 수 있다. 즉 쿡 이사를 해임하고 후임에 '충성파' 인사를 앉힐 경우 7명의 연준 이사 중 제롬 파월 의장과 이사 2명을 제외한 4명을 자신이 임명한 인사로 채우면서 연준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최측근 미란, 파월과 정반대 견해
후임 후보로 지목된 미란은 이미 다른 연준 이사직에 지명된 상태지만 해당 임기는 내년 1월 종료된다. 반면 쿡의 임기는 2038년까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가 더 긴 자리에 미란을 재지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멀패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연준의 금리인하 지연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인물이다. 만약 미란이 쿡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면, 멀패스는 또 다른 공석에 지명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핵심 설계자인 미란을 가장 유력한 인물로 보고 있다. 미란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재무부 선임 고문으로 스트븐 므누신 당시 재무장관을 보좌했던 인물이다. 미란은 파월 의장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고율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이끌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란 위원장은 연준의 정책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 왔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사이의 경계가 너무 흐려졌다는 입장이다. 연준이 시중에서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QE)가 통화정책을 넘어 재정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란은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투자자문사 허드슨베이 캐피털의 매크로 전략 담당자 시절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주장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보고서에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제조업 부활과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탈출을 위해서는 약달러가 필요하다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제2의 플라자 합의 같은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진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달러 가치는 뚜렷한 약세를 보였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올 들어 9.6% 하락했다.
금리인하 속도 빨라질 듯
월가에서는 트럼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미란이 연준 이사로 합류하게 될 경우 금리인하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와 미셸 보우먼 이사에 이어 미란까지 금리인하를 주장할 경우 연준의 금리 동결 명분이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테그리티 애셋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조 길버트는 "미란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이는 연준이 올해 말까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하는 것이며, 연준 내 3명의 반대 의견 속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공식적으로 금리인하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언급했다. 에버코어ISI의 경제학자 마르코 카시라기도 "트럼프의 정책에 대한 미란의 지지를 고려할 때 미란은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등 트럼프 충성파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지메이슨대 메르카투스센터의 데이비드 벡워스 수석 연구원은 "그는 단지 한 명의 구성원일 뿐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거나 더 큰 금리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그가 몇 달 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