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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025년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사상처음으로 900만명을 넘어서면서 국내 고령인구 비율은 이미 17.5%에 육박했다. 국내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며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도 매해 증가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운전면허 자진반납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한 실정이라,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범정부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한 일본, '서포트카 한정면허' 제도 효과 보여
이미 2005년(65세 이상 고령인구 20.2%)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특히 사망사고의 비중이 높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운전면허증 자진반납제도, 고령운전자 표식, 면허 갱신 시 실시해야 하는 인지기능검사, 운전기능검사(일부 적용), 고령자 강습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2016년 말부터 고령운전자의 안전운전 지원 기능을 가진 안전운전 서포트카 보급을 위한 정책적 논의를 시작해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에 들어갔다. 서포트카 중 서포트카S란 비상자동제동장치(AEBS)와 고령운전자 교통사고의 주요인으로 지적되는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 페달 조작 오류를 일정 정도 보완해주는 장치를 장착한 차량을 일컫는다.
일본 정부는 서포트카 보급을 위해 구매보조금을 지원하고, 2022년 5월부터 운전면허를 자진반납하지 않고도 서포트카를 운전할 수 있도록 ‘서포트카 한정면허’ 제도를 신설했다. 그 결과 신차의 비상자동제동장치 장착률이 2020년 4월 기준 90%에 달했으며, 교통사고 감소 효과까지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비상자동제동장치 부착 등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 검토
우리나라의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현황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과실로 3만1,072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고령운전자 과실 교통사고는 전체 사고 20만9,654건 가운데 14.8%를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높다. 2016년 11.1%에서 비율이 3.7%포인트 상승하는 등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사망사고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더 치명적이다. 고령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2020년 720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3,081명 가운데 23.4%에 이른다. 2016년 17.7%였던 비중이 불과 4년 만에 20% 중반으로 튀어 오른 것이다. 2020년 기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가운데 65세 이상은 11.1%를 차지하고 있으나, 사망사고 유발 비율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높았다. 고령 운전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정부는 고령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비상자동제동장치 부착, 최고 속도 제한, 야간·고속도로 주행 금지 등 일정 조건을 내걸고 고령자에게 제한적으로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현재 신체장애인 위주로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고령자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고령자 대상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이미 영국·일본·호주·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령운전자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운전면허 자진반납 제도를 시행 중이다. 고령층이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각 자치단체에서 교통비를 보상해주는 제도로, 1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면허 반납률은 지난해 기준 2%에 그쳤다. 이는 곧 인센티브를 지급받는 것보다 면허를 반납해 생기는 이동의 불편함을 더 크게 느낀다는 뜻이다. 교통카드, 10만원 권 제공 등은 고령운전자의 이동권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허 반납을 유도하려면 대중교통망이 부족한 농촌 등 교통소외지역에서의 이동수단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통소외지역 이동수단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령자 콜택시나 콜버스 운행 등이 제시되고 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운전면허 갱신 주기 개선 주장
한편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연령대별 사고 위험도를 고려해 운전면허 갱신 및 적성검사 주기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와 보험사 질병 자료를 분석해 지난 9월 발간한 ‘고령운전자 연령대별 교통안전대책 합리화 방안’ 보고서가 그 근거다. 보고서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운전자부터 교통사고 위험도가 뚜렷이 증가하고, 80세 이상부터는 사고 위험도가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
연구소가 고령운전자 연령대를 5세 단위별로 구분해 교통사고 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65~69세(16.3)는 60~64세(15.19)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지만, 70~74세(16.94)부터 사고 위험도가 명확하게 차이나기 시작했다. 이후 연령대별 사고 위험도는 75~79세의 경우 18.81, 80~84세는 23.18, 85~89세는 26.47로 80세 이상부터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연구소는 65세~69세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완화하고, 70~74세의 경우에는 현행 5년 주기를 3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75~79세는 현행 3년을 유지하고, 80세 이상은 현행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면허 갱신 시 이수하는 교통안전 교육대상 나이를 75세에서 70세로 하향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연구진, "실질적인 운전능력 점검 꼼꼼히 따져야"
서울대병원 운영 국립교통재활병원 연구진은 최근 경찰청에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세부 도입방안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수시적성검사 대상자 4만3,133명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주간(오전 6시~오후 6시)에 낸 교통사고는 1,912건이었다. 수시적성검사는 고령 또는 후천적 장애가 있는 운전자에 대한 교통안전교육 결과 안전운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운전능력을 검사하는 제도다.
이에 연구진은 모든 고령운전자에 대해 운전면허를 제한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운전능력을 꼼꼼하게 점검해 조건부로 운전면허를 제한하는 게 적합하다고 제시했다. 나아가 현재 만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의 기준 연령을 만 70세로 확대하고, 신체검사를 65세 이상 및 2종 운전면허에도 의무화해 개인의 운전능력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적성검사 결과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저하된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 가능 시간과 장소, 속도, 도로, 차량 제한 등 기타 조건을 부과하는 식으로 조건부 운전면허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도로교통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 방식과 기준을 결정할 계획이다. 후속 연구개발(R&D)이 마무리되는 2024년쯤 구체적인 기준과 방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