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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美 국가신용등급 Aa1로 하향 조정 3대 신용평가사 모두 최고 등급 박탈해 美 국채 매도세 본격화할까

미국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보유하고 있던 마지막 트리플 A(Aaa) 국가신용등급을 잃었다. S&P와 피치에 이어 무디스까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미국 국채 매도세가 본격화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위기가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美 국가신용등급 '또' 강등
16일(이하 현지시간) 무디스는 보도자료를 내고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바로 아래인 ‘Aa1’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무디스 평가에서 미국 신용등급이 Aaa 이하로 미끄러진 것은 1917년 이후 108년 만에 처음이다.
무디스는 강등 이유로 급격히 불어난 미국의 국가 부채를 꼽았다. 미국 정부 부채 비율과 이자 지급 비율이 지난 10여 년간 유사한 등급의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올해 5월 기준 약 36조2,200억달러(5경744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조6,600억 달러(2,324조원)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출한 금액은 1조1,330억 달러(약 1,586조원)로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돌파했다.
미래 전망도 상당히 어둡다. 무디스는 “지속적인 재정 적자와 금리 상승으로 인해 미국의 정부 차입이 가속화할 것”이라며 “현재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어떤 예산안도 수지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세수 확대를 유도해 적자를 메우기는커녕 감세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에 수조 달러 규모의 감세안 입법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 감세안은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도입했던 감세 조치를 연장하고, 추가적인 세금 인하 방안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S&P·피치도 "美 국가 채무 위태로워"
무디스와 함께 국제 3대 신용평가사로 꼽히는 S&P와 피치 역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S&P는 지난 2011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이때도 미국의 정부 부채가 문제였다. 당시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부채 한도 상향을 두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대립했는데, 이 같은 갈등이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23년 8월 1일에는 피치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이 향후 3년간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거버넌스(governance)가 나빠졌다”고 신용등급 하향 이유를 설명했다. 거버넌스는 국가의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경제·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정 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당시 리처드 프랜시스 피치 등급 책정 공동 책임자는 인터뷰를 통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점거 사태를 신용등급 강등에 부분적으로 반영했다”고도 밝혔다. 1·6 의사당 점거 사태는 트럼프 극렬 지지자와 부정 선거 세력이 일으킨 폭동이다. 이들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자 의사당을 점거하고 소요를 일으켰다. 트럼프는 이를 사주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전문가들은 시장 '후폭풍' 우려
미국에 최고 국가신용등급을 적용하는 신용평가사가 사라진 가운데, 시장은 차후 다가올 '후폭풍'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국가의 외채 상환 능력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국제 금융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비용, 국가 채권 금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채권 수익률(금리)이 상승해 일반 소비자들의 대출 금리가 함께 오르고, 외국인 자금은 빠져나간다. 이는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고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해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채권 시장에서 미국 국채 매도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내트얼라언스증권의 국제 채권 책임자인 앤드루 브레너는 “채권 자경단이 미국 국채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채권 자경단은 물가 상승이나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될 때 나타나는 시장의 국채 매도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일각에서는 국채를 넘어 미국 자산 전반에 대한 매도세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투자금융회사 프랭클린탬플턴의 투자 책임자인 맥스 고크먼은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국채를 다른 안전자산으로 전환하고 있기에 부채 상환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이는 장기 미국 국채 가격을 낮추는 것은 물론, 달러 매도 압력을 높이고 미국 주식의 매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국가 부채 리스크가 이미 시장에 잘 알려져 있는 만큼, 국채 매도세는 일시적·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2011년 8월 S&P의 하향 조정 당시와 같은 시장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영국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 역시 "한 단계의 신용등급 하락은 금융 규제 기준상 국채의 담보 가치를 낮추거나 위험 가중치를 높이는 요인이 아니다"라며 국가신용등급 하향이 금융기관의 국채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