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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실질 금리 언급하며 인플레 심화 우려 드러내 美 국채금리 상승세 불붙을까 "인플레이션은 없다" 트럼프, 또 금리 인하 압박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공급 충격'을 언급하며 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지고 장기 금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충격이 잦아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고(高)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美 물가 상황, 한층 불안정해진다?
15일(이하 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마스 라우바흐 연구 콘퍼런스에서 "높아진 실질 금리는 2010년대의 위기 기간보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더 불안정해질 가능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더 빈번하고 잠재적으로 더 지속되는 공급 충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을 수 있다"며 "이는 경제와 중앙은행들 모두에 어려운 과제"라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공급 충격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시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지정학적 불안, 노동 인구 감소 등이 대표적인 공급 충격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또한 공급 충격을 초래하며 장기 금리 상승세를 부추길 수 있다. 고율 관세로 인해 수입 물가가 뛰고 공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이 같은 경제 환경 변화를 반영해 Fed의 통화 정책 결정 운영 체계를 개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Fed는 2020년 완전 고용을 위해 일시적인 물가 상승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통화 정책 운영 체계를 수정했다. 이른바 '유연한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가 치솟고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며 이 같은 체계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치솟는 美 국채금리
이에 더해 파월 의장은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연준의 목표치인 2%와 대체로 일치하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제로금리 시대가 다시 올 가능성은 낮다고 발언했다. 시장에 "높은 금리가 오래 간다(Higher for longer)"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는 최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미국 국채 금리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4일 미국 국채 금리는 만기별로 5~7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연준 금리 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의 경우 금리가 연 4.06%에 달했다. 이는 지난 3월 이후 최고치다.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번 주에만 15bp 올랐다. 월가 금융사들이 줄줄이 연준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늦춰 잡으며 2년물 금리가 뛰어오른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4.53%를 기록하며 5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이는 지난 4월 1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가 식고, 최근 미국 공화당 주도로 제안된 감세 관련 법안이 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확산하며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트럼프, 대립각 여전해
연준과 시장이 나란히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할 것이라 전망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너무 늦는 파월'(Too Late Powell)에게 뭐가 문제일까"라며 파월 의장에게 금리 인하 압박을 가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없고 휘발유·에너지·식료품 그리고 사실상 다른 모든 것의 가격이 내려갔다"며 "연준은 유럽과 중국이 한 것처럼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미 노동부가 최신 물가 지표를 발표한 직후 나왔다. 이날 미 노동부는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1년 2월(1.7%)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 폭이자,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4%)를 밑도는 수준이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2%로 전망치 수준과 맞아떨어졌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4월 근원 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8%, 전달 대비 0.2%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연준의 의견이 계속해서 충돌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장 답을 속단할 수는 없다는 평이 나온다. 한 시장 전문가는 "기업들이 관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재고를 쌓으면서 가격 인상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만큼, 관세 정책의 영향은 5월 물가지표부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최근 미·중 양국이 무역 합의를 이룬 만큼, 시장 예상보다 물가 상승 폭이 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물가 관련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결국 핵심 판단 지표는 경기 침체 심화 여부"라며 "미국의 경기 상황에 따라 연준의 금리 정책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