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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銀 月 방문 800만 명 붕괴 은행 업무 대리업 제도에 촉각 우체국 이어 편의점 등 확대 주목

디지털화로 은행 점포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면서 은행들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루에 내방객이 10여 명 수준인 점포의 경우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폐쇄하거나 통합해야 하지만, 금융 소외계층의 불편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지침이 있어 쉽지 않다.
현금사용 줄고 업무 디지털화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월평균 방문고객 숫자는 800만 명을 밑돌았다. 5대 은행이 숫자를 관련 숫자를 집계한 이후 800만 명 선이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 점포를 직접 방문해 업무를 보는 사람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적금 가입, 계좌이체, 송금 등 어지간한 업무는 모두 가능해진 지 오래인 데다, 반드시 지점 영업담당 직원과 상담을 거쳐야만 했던 주택담보대출이나 기업대출 등도 상당 부분 비대면으로 업무가 가능해졌다.
현금 수요가 크게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이 최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3,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급 수단 중 현금 비중은 15.9%로 신용카드(46.2%)는 물론 체크카드(16.4%)에 비해서도 뒤처졌다. 실물 현금을 인출하려면 ATM(자동 현금입출금기)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고액의 경우 은행 창구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 수요도 급감했다. 자영업자들이 현금으로 받은 돈을 그날그날 은행에 넣어두고, 거스름돈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을 찾던 풍경도 거의 사라졌다.
방문객 지속 감소에도 지점 폐쇄나 통합 쉽지 않아
점점 은행을 찾는 사람들이 감소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은행들이 점포를 없애기도 쉽지 않다. 수요가 자체는 적다고 해도 고령층 등 금융소외층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여기에 정부의 압박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점포 폐쇄가 이어지자 2023년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마련해 점포 통폐합 절차를 강화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이용 고객(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사전 의견 수렴을 실시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점포 폐쇄 여부를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실제 점포 통폐합 과정에서 지역 주민 의견 수렴을 실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 점포 폐쇄 공동 절차에 ‘도보 생활권(반경 1㎞) 내의 점포 합병 등의 경우에는 미적용’이라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부분 인근 점포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주민 의견 수렴을 피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이달 중 이 예외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점포를 폐쇄할 때마다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하라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이번 조치로 은행권 점포 폐쇄 속도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은행은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를 폐쇄할 때마다 지역 주민 의견 수렴을 할 경우 폐쇄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은행 대리업 등 ‘출구 전략’ 재고해야
5대 시중은행은 2023년 말 전국 3,926개의 점포를 두고 있었으나, 2024년 말엔 84개가 줄어든 3,842개를 운영했고, 올해 1분기 말 기준 추가로 줄어 3,707개를 운영 중이다. 5대 시중은행은 일단 당분간 추가 점포 폐쇄 계획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실제 농협은행이 1개의 출장소를 7월에 닫는 것 외엔 아직 예정된 것이 없다. 은행들은 지점을 두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현지에 필요한 인력을 두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도서산간의 경우 근무할 인력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공공기관인 우체국을 통한 통합 점포 운영이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 비금융법인의 업무 대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명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은 2005년 이후 은행대리업의 활성화를 위해 비금융법인에 대해서도 금융대리업을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일본의 경우 편의점 등에서 예금 출금, 세금 납부, 대출금 상환 등 업무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은행 점포 폐쇄가 금융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다 심층적으로 평가하고, 특히 고령층 등 금융 취약 계층의 접근성 보장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점포 축소 속도를 늦추는 것을 넘어,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점포 재배치 전략, 비대면 채널의 고령층 친화적 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 없이 모두가 편리하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와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며 "은행들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