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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브아웃 거래, 2022년 8건→2024년 18건 경기 침체 우려에 비핵심 사업 매각 크게 증가 실탄 많고 고수익 매물 찾는 PE 상황과 맞아떨어져

대기업들이 비핵심 사업을 분리해 매각하는 ‘카브아웃(carve-out)’ 인수합병(M&A)이 늘어나면서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PE)의 핵심 투자처로 자리 잡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 속에 현금 확보에 나선 대기업들과 유동성(현금) 소진이 필요한 PE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자본연 “M&A 시장서 PE 역할 더 확대될 것”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본격화하면서 카브아웃 거래가 늘고 있고, 전반적인 M&A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PE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본연에 따르면 카브아웃 M&A는 주요 대기업이 경기 침체 우려에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비핵심 사업영역 매각에 집중하면서 작년 크게 늘었다.
자본연은 국내 PE들이 여전히 드라이 파우더(미집행 약정액)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 대형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일부 PE는 1조원 이상 규모의 카브아웃 특화 펀드를 결성하는 등 대형화됐다. 또 카브아웃 대상을 대기업 체계에서 독립시켜야 해 M&A 자체는 쉽지 않지만, 저평가된 사업부를 싸게 사 비용구조 개선 등을 통해 대거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하면 고수익을 올릴 여지가 크다.
자본연은 “사업 재편이 필요한 대기업과 고수익 기회를 찾는 PE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카브아웃 M&A가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증가하는 등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PE가 저평가 사업부를 가치 제고 뒤 시장에 매각하는 생태계를 조성해 대기업 사업 재편 과정에서 주요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불필요한 사업부 매각 움직임 확대
카브아웃은 분리와 독립 과정에서 절차가 복잡하고 거래 난이도가 높은 편이지만, 저평가된 사업부를 인수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 카브아웃 형태로 이뤄진 M&A는 2022년 8건, 2023년 10건에서 지난해 18건으로 매해 급증했다.
카브아웃 딜이 눈에 띄게 증가한 건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키워드로 부지런히 불필요한 계열사와 사업 부문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SK그룹이 선두주자였다. SK는 2023년 기준 219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지난해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과제에 따라 정리하면서 M&A 시장에 다양한 계열사와 사업부를 매물로 내놨다.
조 단위 빅딜에도 카브아웃 딜이 상당했다. 작년 하반기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IMM컨소시엄(IMM프라이빗에쿼티-IMM인베스트먼트)의 에코비트 인수가 대표 사례다. 국내 최대 폐기물 처리업체인 에코비트는 태영그룹이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매물로 나왔다. IMM컨소시엄은 지난해 8월 태영그룹 지주사인 TV홀딩스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에코비트 지분 100%를 2조7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고, 같은 해 12월 중순 인수를 완료했다.

LG화학 멤브레인 사업부 매각 추진
전문가들은 PE들이 카브아웃 매물에 관심 갖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 입을 모은다. 현금 창출력을 갖춘 대기업 계열사를 인수하면 수익률이 보장된다는 데이터가 지난 몇 년간 축적돼서다. 올해도 대기업발(發) 카브아웃 매물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투자은행(IB)업계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앤컴퍼니는 SK엔펄스의 CMP패드 부문, SK그룹 계열 특수가스 기업 SK스페셜티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 속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LG화학은 글로벌 PE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멤브레인 사업부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매각 대상은 청주 공장과 멤브레인 생산 기술, 글로벌 수처리 네트워크 등 사업부 전반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 매출은 약 2,000억원 수준이고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약 642억원으로 매각가는 1조3,000억원 안팎에서 논의하고 있다. 대기업의 카브아웃 전략에 익숙한 글랜우드는 지난해 부방그룹의 수처리 회사 3곳을 인수한 바 있다.
LG화학의 과감한 결단은 배터리 소재와 특수 화학제품 중심으로 사업을 집중하려는 전략의 결과다. 미국 듀폰과 일본 도레이 등 글로벌 강자들과의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부를 분할 매각한 뒤 본업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다. LG화학은 멤브레인 사업부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전기차 배터리용 양극재, 분리막 등 이차전지 소재 부문과 고기능성 플라스틱, 바이오 플라스틱 등 스페셜티 케미컬 분야에 재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수처리는 산업 시설 가동과 환경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규모 수요가 일정한 사업”이라며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처럼 제조업과 폐기물 사업체를 보유한 PE가 가져간다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