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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대도시'와 함께 급증하는 美 스타트업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 신규 창업 건수는 팬데믹 초기인 2020년부터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20년 미국의 신규 창업 건수는 전년 대비 90만 건 증가한 440만 건에 달했다. 특히 2020년 7월에는 한 달 사이 55만 2,200건의 창업이 이뤄지기도 했다. 2021년 창업 건수는 전년 대비 100만 건이 증가한 540만 건에 달했으며, 지난해는 30만 건 감소한 510만 건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 무서운 속도로 창업이 증가한 원인은 간단하다. 미국 기술기업의 긴축 경영으로 일자리를 잃은 다수의 인재들이 다른 회사로의 이직 대신 창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기술·스타트업의 감원 현황을 집계해 공개하는 웹사이트 레이오프(Layoffs.fyi)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술기업에서 해고된 인력은 전년 대비 10배 증가한 15만 명 이상이었다. 이는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고용 창출 기업의 수가 해안 도시에 있는 스타트업 허브 외 지역에서 특히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조지아, 미시시피,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등이 세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스타트업 밀집 지역 밖에서 새 출발을 선택하는 기업이 증가하면서, 미국 내 '탈 대도시'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탈 대도시의 원인으로는 원격근무 기조의 확산이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나 공유 오피스가 보급됐으며, 대면 회의의 대체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화상회의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사무실 출근 없이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주요 도시 밖에서 창업했을 때 돌아오는 불이익이 크게 줄어들면서, 미국에서는 부지 가격이 저렴한 지방 창업이 오히려 '메리트'가 될 수 있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유럽 스타트업도 팬데믹 딛고 '우뚝'
팬데믹 시기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팬데믹이 닥친 2020년, 프랑스의 전체 창업기업은 전년 대비 3만 5,000개 증가한 85만 개를 기록했다. 그 중 개인 기업은 63만 개에 달했다. 프랑스의 경우 특히 1인 기업 증가세가 눈에 띈다. 구직난으로 인해 계약직 채용이 증가하면서 1인 기업을 선택하는 청년이 증가한 것이다. 1인 기업은 소유주 1인이 별도의 법인 없이 사업을 영위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독일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려움에 빠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총 120억 유로(약 16조 6,510억원) 규모의 지원금이 편성됐다. 스타트업이 경제 발전을 이끌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스타트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도 불구, 정부 지원을 딛고 성공적으로 고용을 창출해냈다. 2021년 독일 내 스타트업 평균 직원 수는 전년도에 비해 3명 증가한 17.6명으로 나타났으며, 기업 중 91.6%가 1년 이내에 평균 8.7명을 더 고용할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스웨덴 스타트업은 다양하고 체계적인 창업 지원 및 규제 완화 정책, 민간 단체의 창업 지원 등으로 팬데믹을 버텨냈다. 덕분에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던 2020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수는 인구 10만 명당 약 0.8개까지 증가할 수 있었다. 이는 1.4개인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인구 100만 명당 스타트업 수는 429개로 유럽 내 6위를 기록했다.
영국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12억 5,000파운드(약 1조 8,241억원)를 지원했다. 그 결과, 2020년 6월 한 달 동안에만 영국에서 7만 7,000개의 새로운 기업이 등장했다(영국 기업가정신재단 조사).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0%에 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영국에서도 '탈 대도시' 현상의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기존 영국 스타트업의 중심은 5,900여 개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인 런던이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맨체스터, 에든버러, 브리스톨과 같은 영국의 작은 기술 허브들이 대체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이 차후 원격 근무 등 유연한 업무 체계를 유지할 경우, 현재 런던이 장악하고 있는 영국 창업 시장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위주 창업, '도전'은 어디에
반면, 코로나19 팬데믹 속 한국 창업 시장에는 이렇다 할 급성장이 없었다. 우선 해고 자체가 적었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 이후 화이트칼라 중심 대규모 해고, 퇴사, 이직 등이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은 고용 안정을 위한 정부 지원금이 있어 그 타격이 비교적 덜한 편이었다.
도전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다니던 직장을 자진해서 그만두고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은 극소수다. 요즘처럼 경기가 침체 상황에는 더욱 그렇다. 실제 2021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20~34세 남녀 청년 구직자 500명을 대상으로 취업 희망 분야를 조사한 결과, ‘공공 기관·공무원(36.8%)과 대기업(17.2%)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취업만 된다면 어디든 상관없다’(16.2%), ‘중견기업’(14.6%), ‘중소기업’(11.2%), ‘벤처·스타트업’(2.4%) 순이었다.
한국의 경우, 창업 시에도 어느 정도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청년층의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 증가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꾸준한 인기 창업 아이템이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20대 창업자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bhc치킨이 2020년 신규 매장 오픈을 위한 교육과정 수료자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수료자 중 2030세대 비중은 자그마치 48%에 달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주도하는 카페 업종 역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대형 커피 매장 중 리딩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매장 수는 2021년 기준 1,640개에 달한다. 대형 커피 브랜드인 투썸플레이스 매장이 1,400여 개, 엔제리너스 매장은 460여 개, 카페베네 매장은 230여 개 수준이다. 예비 창업자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창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도전 정신과 열정을 지닌 청년들이 이끌어가야 하는 스타트업 업계는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창업 증가는 현재 '글로벌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근무 환경이 유연해지고, '탈 대도시'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 같은 흐름에 좀처럼 편승하지 못하는 양상이다. 차후 혁신 기술 발전 및 경제 성장에 있어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대한 만큼,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 및 도전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