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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용한 사직 - ③ '우리는 임금대로 행동한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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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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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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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임금대로 행동한다(Act your wage)'

작년 7월 한 틱톡커가 '조용한 사직'이라는 표현과 함께 업무에 열정을 쏟기보다 여가 시간을 챙기는 삶을 살겠다고 주장했던 트렌드가 급여 이상의 노동력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는 운동으로 번지게 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업무하는 직원의 경우 오후 4시 59분 이후에 오는 모든 연락은 받지 않겠다는 자세가 그중 하나다. 열심히 일하다 지쳐버리는 '번아웃'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워라밸'보다 한 발 더 나가 업무 자체에 대한 열정마저 사라진 모습으로 종종 해석된다.

'임금대로 행동한다'의 미국식 모습

'조용한 사직'으로 표현되는 문화 현상에 대해 작년 9월 여론조사 기관 갤럽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최소 50% 이상이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의 조사에 따르면 조용한 사직의 이유로 경력 개발과 발전 기회 부족, 부적절한 보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리더 등이 꼽혔다.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는 있으나 불만 사항은 여전히 노동자의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내 환경이 주요 요소인 것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다 국내로 귀국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 A씨는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며 퇴근하는 팀장들이 밤 11시에도 바로 답장을 보내주고, 다음 날 오전에는 밤새 많은 준비를 한 결과물을 갖고 나타난다"고 밝히기도 했다.

퇴근해서 저녁 식사를 가족, 친구들과 할 수는 있으나 커리어 발전과 사내 경쟁 등의 이유로 늦게까지 회사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 전문가 권도균 대표의 주장대로 '회사는 돈을 주고 일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는 관점이 잘 묻어나는 모습이다. 일을 통해 커리어 발전을 이뤄내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인력은 팀장급으로 승진이 이뤄지고, 그렇지 않은 인력은 좀 더 '워라밸'을 찾고 커리어 발전을 포기하는 모습이다.

'임금대로 행동한다'의 한국식 모습

반면 국내에서 직장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인식되는 '임금대로 행동한다'는 커리어 발전보다 '편의성'을 찾는 데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커리어 발전에 대한 의욕은 매우 떨어진 상태에서 업무 난이도가 낮고 급여를 많이 주는 이른바 '꿀 직장'을 찾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2022년 여름까지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강남 일대 모 스타트업의 온라인 업무에 참여했던 한 경력자는 업무 난이도가 매우 낮은 데이터 수집 작업에 정부 지원금이 나와 월 200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기업이 사후 최대 월 190만원까지 보상을 받게되어 실질적으로 회사 부담금은 4대 보험액을 포함해도 크지 않다는 사실과 자신이 해고가 될 경우 해당 기업이 더 이상 정부의 일자리 지원 사업에 신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업무를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이런 업무 자리를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이 성행하고 있어 '꿀 알바'가 아닌 업무에는 지원자가 급감하는 현상을 대부분의 직업 공고에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스타트업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역시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채용한 인력들의 업무 역량이 매우 미진한 탓에 기초적인 업무를 시킬 수밖에 없었고, 정부가 고용을 늘린 것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 지원 사업 위주로 채용을 임의로 부풀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식 모습의 미래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층에서의 변화는 고임금을 노리는 외국계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등의 직군에도 확산하는 추세다. 국내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에 적응한 MZ세대가 지속적으로 재택근무를 요구하자 감시·감독을 위한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무실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삼성은 강남의 삼성생명 건물에 재택근무자를 위한 카페형 사무실을 구축했고, 라인게임즈는 신논현역 일대에 월세 금액만 1억원이 넘던 사무실을 없애고 지역을 변경하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택근무로 근무 방식이 변경되면서 '조용한 사직'의 경향성이 더 가속화된 탓에 업무 성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공통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최근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됨에 따라 재택근무제를 철회하고 다시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MZ세대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역량 저하 심화, 결국의 사회적 부채로 돌아올 것

여의도 일대에서 소형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는 B씨와 C씨는 MZ세대 직원들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로 전환했으나 기사의 품질이 낮아져 고민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경력직 선배들을 통해 사무실에서 지적을 받으며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최근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경력직 선배들과의 의사소통이 사라졌던 부분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B씨는 "90년대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갈굼', '태움' 등으로 표현되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으나, 기사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논현동에서 IT스타트업 CTO를 역임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집에서 어떻게 개발하는지 궁금해서 화면을 같이 보자고 하면 기겁을 한다"며 업무 역량이 모자란 탓에 감독을 강화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00년대 초에는 운동권 출신 선배들이 역량이 부족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우리 세대가 열심히 역량을 쌓아 올렸더니 다시 아래 세대가 역량을 쌓을 생각 없이 회사 다니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당시 386, 현재 686으로 불리는 세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에 현재의 40대가 큰 불만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담배 피우러 나가서 시간 버리고 일을 떠넘기던 것과 현재의 20대가 재택근무 중에 업무 불량으로 일을 떠넘기는 것 사이에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는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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