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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주식 발행 규모는 전월 대비 감소한 반면, CP(기업어음)·회사채는 전월 대비 크게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단기·중기채 발행 실적 증가의 원인을 ‘국내 기업들의 금리하락에 대한 기대’와 ‘투자자들의 단기채권 선호 현상’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주식 발행 규모는 줄고 회사채 발행 규모는 증가
지난 22일 금감원이 발표한 ’23.4월 중 기업의 직접금융 조달실적’에 따르면, 주식 발행 규모는 821억원(5건)으로 전월 대비 67.1% 감소했으며, 이 중 기업공개는 3건 및 447억원으로 전월 대비 75.8% 감소했다. 유상증자의 경우 2건 및 374억원으로 전월 대비 42% 감소하는 추이를 보였다.
한편 4월 중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조1,548억원으로 전월 대비 7.8% 증가했다. 금감원은 회사채를 일반회사채, 금융채(지주채·은행채 포함), 자산담보부채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일반회사채는 6조3,350억원으로 전월 대비 34.7% 증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4월 들어 기업의 차환·운영자금의 비중이 감소하고 시설자금이 증가하는 추이를 보였다”며 “이로 인해 중기채 위주의 일반회사채 발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금융채는 12조524억원으로 전월 대비 4.9% 감소했다. 이 중 금융지주채는 7,400억원으로 전월대비 134.2% 증가했으며, 은행채는 3조9,375억원으로 전월 대비 20.8% 감소, 기타금융채는 7조3,749억원으로 전월 대비 0.2% 감소했다.
ABS(자산담보부채권)은 1조7,674억원으로 전월 대비 34% 증가했다. 이중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 등이 신용을 보강하여 발행하는 ‘P-CBO’는 2,814억원으로 전월 대비 3,029억원 감소했다.
단기채 중심 CP 발행 규모는 증가
2023년 4월 중 CP 발행 실적은 총 36조4,604억원으로 전월 대비 16.2% 증가했다. 이 중 금융사 및 일반기업 등이 발행하는 ‘일반CP’는 20조548억원, PF 대출채권을 기초로 발행하는 ‘PF-ABCP’는 3조2,112억원, PF 이외의 자산(미수금, 회사채, 정기예금 등)을 기초로 발행하는 ‘기타ABCP’는 13조1,944억원으로 전월 대비 각각 2.2%, 36.9%, 40.5% 증가했다. CP 잔액은 205조 2,243억원으로 전월 대비 0.7% 증가했다.
단기사채는 총 75조 3,897억원으로 전월 대비 11조4,185억원 감소했다. 이 중 일반단기사채는 54조2,326억원, PF-AB단기사채는 11조7,436억원, 기타AB단기사채는 9조4,135억원으로 전월 대비 각각 13%, 21.9%, 0.4% 감소했다. 단기사채 잔액은 68조5,168억원으로 전월 대비 2.2% 감소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단기사채 발행 규모는 감소하는 한편, CP 비중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속되는 경제 악화에 기업들이 바닥나는 자금 유동성을 상대적으로 발행이 수월한 CP로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기사채는 이사회가 설정한 한도 내에서만 발행할 수 있고, 공시를 통해 매매 사실을 보고하도록 규정하는 등 여러 가지 발행 관련 ‘제약 사항’이 걸린다. 반면 CP는 만기 제한이 없고 대표이사가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는 등 기업 입장에서 단기 자금 조달이 용이하기 때문에 채권 발행이 이에 쏠렸다는 것이다.
불황 속 CP 선호 현상, 기업과 투자자의 속내는
전반적으로 기업 외부의 장기채 발행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단기채 성격의 CP 발행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기업들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다. 기업들은 현재 금리가 최고점을 달성한 것으로 보고, 최대한 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단기채에 자금조달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 금융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최소 내년 1분기에는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투자자 입장에서 CP는 기업에 급작스러운 부도가 발생할 경우 선순위 채권에 대한 변제가 먼저 진행된 후 상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만큼 손실 리스크가 크다. 또한 CP를 발행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재무상태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 본인이 투자 기업의 자금 흐름 및 재무 건전성을 스스로 확인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CP에 자금이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속되는 경기 침체 기조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투자자들이 평가 손실을 우려해 단기 채권에 수요가 대거 쏠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국내 기업 대부분의 영업 실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 투자자들이 기업의 채무 불이행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 전문가 A씨는 “요즘같이 위험한 시기에 장기채권을 매수해서 굳이 리스크를 키우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라며 “CP 투자를 통해 유동성을 빠르게 확보하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