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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실시하는 11번가, 큐텐 매각 실패 이후 살길 찾나 일부 강자가 고객 수요 흡수하는 이커머스 시장 구조, 여타 업체는 '한숨' 기한 내 상장 실패 후 매각까지 무산, 11번가의 운명은
SK그룹 계열의 이커머스 기업인 11번가가 27일 개인 커리어 전환과 회사의 성장을 위한 차원에서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희망퇴직이다. 최근 큐텐(Qoo10)과의 매각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생존을 위해 '수익성 개선'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쿠팡, 네이버 등 일부 상위 업체가 이용자 수요를 독식하고, 이외 업체는 시장 경쟁에서 속절없이 튕겨 나가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흔들리는 11번가, 희망퇴직으로 수익성 제고
11번가 특별지원 프로그램은 전사 모든 구성원 중 만 35세 이상, 5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다음 달 10일까지 시행된다. 희망퇴직 신청자는 급여의 4개월분을 받을 수 있다. 11번가 측은 이번 희망퇴직은 다음 진로를 준비하는 구성원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며, 오로지 구성원의 자발적 신청에 기반해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희망퇴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익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번가는 앞서 2018년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투자를 받았지만, 실적 악화 및 IPO 시장 침체 등으로 상장에 실패한 바 있다. 이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싱가포르 이커머스 업체 큐텐과 매각 협상을 벌였으나, 실사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협상이 결렬됐다. 투자 관련 상황이 꾸준히 악화하는 가운데, 2025년 턴어라운드를 노리는 11번가 입장에서는 수익성 제고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11번가의 상황이 현재 한국 유통 산업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 네이버 등 거대 이커머스 업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위메프, 티몬, 11번가 등 대다수 이커머스 업체는 자리를 빼앗긴 채 시장 외곽으로 밀려났다. 소수의 기업에 시장 지배력이 편중되며 이커머스 시장의 '과잉 경쟁' 추세가 사그라드는 양상이다.
쿠팡·네이버·SSG '이커머스 3강'
현재 이커머스 시장의 '양대 산맥'은 쿠팡과 네이버쇼핑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온라인 거래 시장(53조7,142억원)에서 쿠팡은 21.8%, 네이버는 20.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지난 6월 오픈서베이가 만 20∼59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쇼핑몰'로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은 쿠팡(37.7%)이었다. 이어 네이버쇼핑(27.2%), G마켓(6.8%), 11번가(5.5%) 순으로 나타났다.
2010년 소셜 커머스로 시작한 쿠팡은 2015년 현재의 직매입 기반 온라인 유통사로 전환한, 매서운 성장세를 보여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3분기에는 본격적으로 네이버를 추월했고, 지난해 3분기에는 사상 처음 분기 흑자를 냈다. 쿠팡의 질주에 밀려나는 듯 보였던 네이버도 최근 멤버십 구독, 네이버페이 연계, 도착보장 상품 등을 앞세워 쿠팡을 바짝 뒤쫓고 있다.
SSG닷컴 역시 시장 강자로 지목된다. SSG는 2021년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G구)’를 인수하며 일약 3위 커머스 플랫폼으로 올라선 바 있다. 이후 익일배송인 '쓱원데이배송'을 도입하고, 신세계그룹 통합 멤버십 '유니버스'를 출시하는 등 '양대 산맥 따라잡기'에 힘을 쏟는 양상이다. 2021년 한 차례 쓴맛을 봤던 IPO 시장에도 내년 중 재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도 매각도 안갯속, 위기의 11번가
그러나 이커머스 3강 외 업체들은 거대 기업의 '그림자'에 짓눌리고 있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장 외곽에서 생존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11번가 역시 마찬가지다. 11번가는 당초 올해 9월 30일까지 상장을 마쳐야 했다. 2018년 SK플래닛으로부터 분사한 직후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가 참여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가량을 투자받으며 '기한 내 상장'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IPO 시장 분위기가 얼어붙자, 국민연금 등 일부 FI(재무적 투자자)가 상장 강행에 반대 의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IPO 시장 상황을 고려, 2018년 투자 시기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투자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2조7,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11번가는 수개월간 실사가 진행된 상황에서 발을 뺐다. 적절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점까지 IPO를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큐텐과의 매각 협상이 진행됐다. 매각을 통해 큐텐으로부터 현금을 확보하면 11번가 FI의 투자 원금을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큐텐은 지난해 9월과 올해 5월 티몬과 위메프의 경영권을 획득하면서 이커머스 기업들을 여럿 인수해 온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사 과정에서 세부 조건 등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SK스퀘어 측이 먼저 큐텐 측에 거래 중단 의사를 전했다. IPO도 매각도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11번가의 운명은 또다시 안개 속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