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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美 연방 정부에 2억 달러 낸다 '이념 전쟁' 최전선 선 하버드대 부담 가중돼 "자유인가 복종인가" 기로에 선 美 고등교육

미국 내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의 근원지로 꼽히던 컬럼비아대학교가 연방 정부의 압박 앞에 백기를 들었다. 정부 보조금을 복원하는 대가로 수천억원대의 벌금을 내고,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행보를 단속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컬럼비아대, 트럼프 앞에 무릎 꿇어
28일 학계에 따르면, 컬럼비아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통해 2억 달러(약 2,740억원)의 벌금을 내고 유대인 교직원에게 2,100만 달러(약 290억9,34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캠퍼스 내 반이스라엘 분위기를 방치하고 충분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더해 컬럼비아대는 앞으로 입학 및 채용 과정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교내 유대인 혐오 행위를 근절하는 조치를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연방 보조금 회복을 위한 행보로 읽힌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학가의 반이스라엘 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연방 정부 지원금을 속속 철회하고 있다. 콜롬비아대의 경우 지난 3월 4억 달러(약 5,476억원) 규모 보조금을 취소당했고, 복지부와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보조금도 동결당했다. 매년 연방 정부로부터 13억 달러(약 1조7,755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으며 재정을 꾸려 온 컬럼비아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다.
클레어 시프먼 컬럼비아대 총장 직무대행은 이번 합의가 고용과 교육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대학 교수진 사이에서는 대학 경영진이 도덕성을 팔고 재정 안정을 택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포즌 컬럼비아 법대 교수는 이번 합의를 '사실상의 강제 추징(shakedown)'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정부와 전면전 벌이던 하버드대 '곤혹'
이번 합의가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고등교육 개편의 청사진처럼 작동할 경우, 다른 대학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연방 개입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린다 맥마흔 미 교육부장관은 컬럼비아의 대응을 '모범적 협조'라고 치켜세우며 대학가 전반에 대한 압박을 가중하고 있다.
미국 대학가 내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하버드대에도 상당한 부담이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학내 반유대주의 시위 단속, 입학과 교수진 채용 등 학제 운영에 대한 상세한 요구 사항을 담은 문건을 발송한 바 있다. 이에 하버드대는 같은 달 앨런 가버 총장 명의의 공개서한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며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정부의 요구가 하버드대의 역사와 전통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하버드대에 지급되는 270만 달러(약 38억원) 규모의 국토안보부 보조금을 취소하고, 수년간 22억 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보조금과 6,000만 달러(약 854억원) 규모의 계약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는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이 위법한 월권행위라고 판단, 지원금 중단을 멈춰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컬럼비아대와는 반대로 법적 대응을 불사하며 정부와 정면충돌한 것이다.

美 고등교육 시험대 올랐다
정부와 대학가의 이념 갈등이 점차 격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번 조치가 미국 고등교육의 허점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계획이 잘 작동할 경우, 이번 분쟁이 미국 대학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개혁'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학계 곳곳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감시 체계가 이념 개입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외부 감시단이 입학, 교과 균형, 인사 기준 등을 감독하는 상황에서 대학가가 진정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분쟁의 결과에 따라 미국 고등교육의 나아갈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향후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이 정부의 압박 앞에 무릎을 꿇을 경우, 이념 통제를 기반으로 대학을 재편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는 한층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학가가 '자율적 탐구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정치적 요구에 복종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