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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구소련·중국·인도 이어 5번째 달 탐사국 태양전지 결함 발생으로 '반쪽 성공' 평가도 우주항공청 출범 앞둔 한국, 격차 좁힐 수 있을까
일본 소형 달 탐사선 ‘슬림(SLIM)’이 목표했던 핀포인트 착륙에 성공했다. 최근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유럽 등 강대국 간의 패권 전쟁이 우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달착륙 성공으로 글로벌 우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32년쯤 달 착륙선을 발사할 계획인 만큼 일본에 최소 8년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슬림, 목표지점 55m 거리에 착륙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25일 기자회견에서 탐사선 '슬림'의 달 착륙과 관련해 "착륙 목표 지점으로부터 55m 정도 위치에 착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JAXA는 슬림의 착륙 지점 오차를 기존 수㎞ 이상에서 100m 이내로 대폭 줄인 핀포인트 착륙에 도전했는데, 이에 대해 슬림의 책임자인 사카이 신이치로 JAXA 프로젝트 매니저는 "100점 만점”이라며 “기대한 대로 실력을 발휘해줬다"고 자평했다. 달에는 물이 부분적이지만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고 추정돼 원하는 지점에 착륙하는 기술이 중요한 만큼, 핀포인트 착륙 기술을 이용하면 달 표면의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찾는 데 유리해진다.
JAXA는 이날 달 착륙 직전 슬림에서 분리된 소형 로봇 '소라-Q'가 촬영한 슬림의 사진도 공개했다. 소라-Q는 장난감 제조업체 다카라 토미와 JAXA가 공동 개발한 로봇이다. 사진 속 슬림은 울퉁불퉁한 달 표면에 비스듬히 서 있다. 계획에 따르면 슬림의 태양전지 패널은 발전을 위해 착륙 후 위로 향해야 하지만, 기체가 기울어지면서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JAXA는 슬림이 달 표면으로 하강하던 중 고도 50m 부근까지는 정상적으로 닿았지만, 메인 엔진 중 1기가 파손돼 착륙 직전 균형을 잡기 위한 역분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슬림은 착륙 후 태양전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배터리 모드'로 전환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며칠 동안 운용할 예정이었던 슬림은 불과 2시간 반 만에 멈춰 섰다.
그러나 JAXA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태양광이 태양전지와 닿게 될 경우 발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배터리 잔량이 10%가량 남은 상태에서 전원을 꺼 향후 복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AXA는 "달 표면은 낮과 밤이 2주마다 반복돼 달의 일몰에 해당하는 2월 1일까지 태양전지에 태양광이 닿아 전력이 복구되면 탐사선이 자동으로 기동해 다시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5번째 달 착륙국
일본은 이번 달 표면 착륙으로 미국, 구소련, 중국, 인도 등과 함께 독자적으로 달을 정복한 세계 5대 우주강국으로서 본격적인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착륙은 과거 수km에 달하던 오차를 극적으로 줄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는 우주기술의 진일보를 시사하는 것으로, 핀포인트 착륙기술은 '할 수 있는 곳에 착륙하는 시대에서 원하는 곳에 착륙하는 시대'로 전환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은 지구로부터 3억4,000㎞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서 내부 물질을 포집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는데, 이는 미국을 뛰어넘는 성과다.
앞서 슬림은 지난해 9월 7일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H-IIA 발사체에 실려 발사됐다. 이후 지난해 12월 25일에 무사히 달 궤도로 진입해 올해 1월 15일부터 달 근처로 하강을 시작했다. 이달 19일 고도 15km까지 하강한 슬림은 20일 오전 0시부터 본격적인 착륙 하강에 돌입했다.
일본이 달 착륙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JAXA는 2022년 11월 미국 아르테미스 미션의 우주발사시스템(SLS) 로켓에 초소형 탐사기 ‘오모테나시’를 실어 보냈으나 비행 도중 통신 두절로 착륙에 실패했다. 지난해 4월에는 일본 우주 스타트업 아이스페이스가 개발한 달 착륙선 ‘하쿠토-R 미션1’이 도전에 나섰으나 달 착륙을 위해 하강하던 중 고도 계산 오류로 월면에 충돌했다. 다만 아이스페이스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올해 4분기 ‘하쿠토-R 미션 2’를 발사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이번 슬림 착륙 성공으로 일본의 기술력을 입증했다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격화하는 우주 개발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갈길 먼 한국, "일본과 기술 격차 매우 크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달 탐사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달에 교두보를 먼저 확보해야만 미래과학산업과 항공산업 등 우주 패권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대의 ‘문레이스’가 미국과 소련의 체제 과시의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의 우주 경쟁은 우주가 가진 경제적, 산업적, 군사적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 달아오르고 있다.
달에는 핵융합에 쓸 수 있는 청정 에너지원인 헬륨3 등 희귀 광물 자원이 풍부한 데다 중력이 지구 6분의 1에 불과해 우주 터미널을 짓는 데도 적합하다. 특히 달 남극엔 얼음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 인류가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근거지와 로켓연료용 수소 조달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최근에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의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는 만큼 발사체나 위성항법 등에 있어 얼마나 많은 자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일본이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우주강국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아직 갈길이 멀다. 한국은 지난해 10월에야 첫 독자발사체인 누리호를 1차 시험 발사한 데 반해 일본은 투자 규모나 기술 수준이 훨씬 앞서 있다. 우주발사체 개발 및 운용 기술 수준도 한국은 미국의 60%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85%에 달하며, 우주비행체·위성 기술의 경우 한국은 56%, 일본은 80%대다. 우주환경 관측·감시·분석 기술 역시 한국은 미국의 55.5%지만 일본은 79%에 이른다.
현재 달탐사선 다누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해 달 궤도를 돌고 있지만, 달 표면 착륙은 8년 뒤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32년 달 착륙, 2045년 화성 탐사란 목표를 세우고 오는 5월 우주항공청 출범을 앞두곤 있으나 300명에 달하는 우주항공청 전문 인력을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또한 우주항공청이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려면 조직 이관과 예산 확보, 하위법령 등이 마련돼야 하는 만큼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본의 우주기술 전략을 배우고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세계 최초로 소행성에 탐사선을 보내 시료를 채취해 오는 등 실패 가능성이 높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우주 선진국"이라며 "우리나라도 우주기술을 단순히 과학적인 이벤트나 연구개발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뚜렷한 목표를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도 "누리호 성공으로 7대 강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일본, 인도 등과 우리나라는 격차가 매우 크다"며 "달 착륙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미래 탐사기술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