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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진화하는 인신매매와 ASEAN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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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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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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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신매매 발생,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
2021년 세계 160개국의 인신매매 피해자는 5,000만명 
특히 아세안 국가에서 인신매매, 노동 착취 문제 심각해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호주의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이 발표한 '2023 세계노예지수(Global Slavery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160개국에서 인신매매 등으로 인해 '현대판 노예'로 살고 사람이 자그마치 5,000만 명에 이른다. 인신매매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전쟁이나 테러 등 전통적 방식의 군사적 위협과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국가와 지역 안보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ASEAN(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는 △강제 이주로 인한 갈등 △자연재해로 인한 기후적 취약성 △정치적 복잡성과 갈등 △아시아 범죄조직들의 초국가적 연계 △허술한 국경통제와 불법 이민 등으로 인해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의 문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Indonesia Thwarts Illegal Labor Smuggling
사진=East Asia Forum

전 세계 인신매매 피해자 중 아세안 국적자 24,000명 넘어

동남아시아는 세계적으로 인신매매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 중 하나로 아세안의 국민들은 글로벌 인신매매 조직의 표적이 돼왔다. 유엔(UN)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동티모르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에서 발생한 인신매매의 피해자는 10,045명에 이르며, 전 세계 인신매매 피해자 중 아세안 국적자의 수는 24,70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자발적인 신고에 기반한 데이터로 실제로는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세안 국가들은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에 대응하는 메커니즘이 취약하고 이로 인해 국민들은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에 노출돼 있다. 이에 각국 정부는 인신매매를 적발해 조치하는 자국 법 집행기관의 역량과 시스템이 강화하고 신고절차 등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세안 차원에서는 2004년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선언(ASEAN Declaration Against Trafficking in Persons Particularly Women and Children)', 2012년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아세안 선언(ASEAN Declaration Against Transnational Crime)' 등을 통해 인신매매 방지와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브루나이를 제외한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이 2015년 결성한 유엔의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에 비준했다. 또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신매매 척결을 위한 사법적 조치를 강화하고자 역내 협력을 주도하는 한편 국제기구, 역외 국가들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일례로 '아세안-호주 간 반(反)인신매매 프로그램(ASEAN–Australia Counter Trafficking program)'은 인신매매 관련 데이터 수집 방법을 개선하고 국가별 연례보고서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 착취와 이주노동자의 보호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착수해 10년간 진행되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TRIANGLE in ASEAN)'는 호주와 캐나다 외교부가 지원하고 세계노동기구(ILO)가 추진하는 아세안 역내 이주노동자 보호사업으로 메콩강 인근 5개국과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를 집중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 아동 등 취약계층의 노동 착취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아울러 '안전과 공정 프로젝트(Safe and Fair: Realizing Women Migrant Workers’ Rights And Opportunities in the ASEAN Region)'는 유엔과 유럽연합(EU)이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다년간 추진해 온 이니셔티브로 아세안 여성에 대한 안전하고 공정한 노동이주 보장을 골자로 하며 ILO와 유엔여성기구(UN Women) 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거치며 온라인 사기 등 범죄 수법 변화

하지만 아세안 내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에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활동이 증가하면서 로맨스 스캠(romance scam)부터 암호화폐 사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디지털 사기가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아세안 국가들의 인터넷 사용자는 약 4억6,000만 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시장 중 하나다. 하지만 규모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여전히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수준이 낮고 개인정보 보호 등 데이터 보안에 대한 규정이 미흡해 온라인 사기 등 디지털 범죄에 취약한 실정이다.

온라인 사기가 증가하면서 인신매매 피해자의 프로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저학력 저임금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온라인 사기의 피해자들은 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고학력자가 많다. 아세안 내에서 사설 채용알선업체들을 양성화하기 위해 면허 발급, 관리감독 강화 등의 조치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상태다. 온라인 구직·채용 경로의 확대 등 노동 이주와 관련한 디지털 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인신매매의 적발과 예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아세안 회원국들이 개별 국가 차원의 규제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초국가적인 사이버 범죄를 사전에 탐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아세안 차원의 역량이 확보되지 않는 한 근절은 쉽지 않다. 이에 아세안의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주요국 지도자들은 인신매매 등 인권을 침해하는 기술 남용 문제를 지역 안보의 중요한 쟁점으로 인식하고 지난해 9월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기술 남용이 초래한 인신매매 퇴치에 관한 아세안 정상 선언(ASEAN Leaders’ Declaration on Combating Trafficking in Persons Caused by the Abuse of Technology)'을 채택했다. 앞서 같은 해 7월에는 사이버 보안에 대한 역내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아세안 국방장관회의 산하 사이버안보정보 전문센터(ASEAN Defence Ministers' Meeting Cybersecurity and Information Centre of Excellence, ACICE)가 개소하기도 했다.

진화한 인신매매 척결 위해 민간 부문과 협력체계 강화해야

인신매매와 관련된 범죄는 국경을 넘나들며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피해자들도 국경을 넘어 비합법 노동시장으로 흡수되면서 식별 정보를 확인할 수 없거나 스스로 신원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신매매의 경우 범죄에 대한 책임 여부 판별이나 피해자를 가려내는 데 어려움이 많다. 인신매매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인지와 적극적 조치, 세밀하고 엄정한 수사, 사법적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발생한 '캄보디아 대규모 인신매매 사건' 당시 대만 정부는 당시 대만 정부는 "대만인 약 5,000명이 캄보디아를 여행했다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들 중 적어도 370명이 의사에 반해 구금됐다"며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노린 국제 인신매매단에 의해 캄보디아나 미얀마 국경지대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캄보디아 정부는 캄보디아가 인신매매 범죄의 중심지가 된 것에 대해 "불법 온라인 도박, 인신매매, 장기매매, 강제 노동 등을 운영하는 중국 범죄 조직의 소행으로 캄보디아 역시 피해자"라며 "인신매매 범죄 소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후 캄보디아 정부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해외취업을 미끼로 아세안 국가의 노동자들을 유인해 시아누크빌로 이주시킨 범죄 조직에 대한 단속에 착수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에 따르면 자국민 240여 명이 성공적으로 송환됐고 향후에도 송환을 위해 캄보디아 당국과 계속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와 중국 또한 이 범죄에 연루된 중국인 주동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전통적인 인신매매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인 범죄 조직을 찾아 조치하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본국과 수용국 간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국가 간의 법률적 적용을 조율하고 피해자를 송환하며 인신매매 대응과 관련한 기관관 강력한 공조와 정보 공유 경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양자 간 혹은 다자 간 협력체계를 구동해 왔다.

하지만 인신매매 활동이 온라인 공간으로 확산되고 국제 조직범죄의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민간 부문과의 협력이 중요해졌다. 특히 민간 부문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인신매매를 조장하는 방법을 파악하고, 소셜 미디어 사용자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과정을 제공하며, 허위 채용 공고를 확인해 신고하도록 인터넷 사용자의 인식을 제고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인신매매 방지를 위해 소셜 미디어의 활용해 관련 콘텐츠를 확산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적절한 규제 방안 등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술은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기술과 미디어의 순소비자(net consumer)로서 온라인 환경의 변화와 부작용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아세안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개인정보 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책임감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피해자의 처벌이 아닌 보호를 우선시하는 인권 강화에도 중점을 둬야 한다. 아울러 인신매매를 적발하고 수사하고 예방하는 데 필요한 공공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 간 협력체계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원문의 공동저자는 싱가포르 유소프 이샥 동남아연구소(ISEAS-Yusof Ishak Institute) 아세안연구센터의 멜린다 마르티누스(Melinda Martinus) 수석 연구원과 인디라 자흐라-아리다티(Indira Zahra-Aridati)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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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린다 마르티누스/사진=LinkedIn

영어 원문 기사는 Tackling technology abuse and human trafficking in ASEAN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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