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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장관 공석으로 둔 여당, '폐지 공약' 강조하고 나섰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2022년 대선 당시 여당에 승리 안겨줘 여야 충돌 끝에 잊혔던 공약, 굳이 총선 직전에 꺼내든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존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4월 총선이 가까워져 오는 가운데, 2022년 대선 당시 여당 승리의 '열쇠'로 작용한 여성가족부 폐지 카드를 재차 꺼내든 것이다. 22일 대통령실은 여성가족부 장관을 공석으로 둔 것에 대해 "법 개정 이전이라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총선 지면 여성가족부 폐지 어렵다" 여당의 메시지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뒤 후임 여성가족부 장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한동안 신영숙 차관 대행 체제로 여성가족부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에서였다. 정부 관계자는 “조직 개편 전문가인 신영숙 차관 주도로 (여성가족부) 업무 이관을 위한 사전 작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미 실·국장 라인에 타 부처 담당자를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여당이 사실상 여성가족부 폐지를 위한 '초석'을 깔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당이 장장 5개월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현숙 장관의 사표를 총선 직전에야 수리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윤 정부가 뒤늦게 여성가족부 장관직을 비운 것은 추후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지지층에게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을 벗어나야만 여성가족부를 폐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여당이 21대 국회의 여소야대 국면으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실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2건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으나, 해당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여당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기 위해선 4월 총선에서의 국민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 2022년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승리의 단초가 된 공약을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대선 뒤흔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실제 지난 대선 당시 여당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특정 지지층을 결집하는 하나의 무기로 활용했다. 대선의 주요 쟁점은 남녀 간의 성별 갈등, 이른바 '젠더(gender·성별) 이슈'였다. 20·3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으로 인한 '역차별'을 주장하며 사상 갈등이 확산한 영향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전국 만 19~59세 남성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연구에 따르면, 20대 남성 중 '적대적 성차별주의' 또는 '반(反)페미니즘'의 성향을 나타내는 비율은 자그마치 50.5%에 달했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말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해당 수치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곧 '여성우월주의'라는 인식이 특히 청년층 사이에서 확산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정치권은 이 같은 젠더 갈등의 '틈'을 이용했다. 특정 성별 집단의 입맛에 맞는 공약을 쏟아내며 표심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여당 측은 여성 우대로 인해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20·30대 남성의 표심을 노렸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지원하는 차별적 부처'라는 이들의 주장을 이용,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성별 갈라치기'는 특히 젠더 갈등 이슈에 민감한 청년층의 표심을 양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선 당시 KBS, MBC, SBS 방송 3사가 9일 투표 종료와 함께 공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에서 윤 대통령은 58.7%의 지지를 얻으며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36.3%)를 크게 앞섰다. 반면 20대 이하 여성에서는 이 대표가 58%, 윤 대통령이 33.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잊혔던 공약, 또다시 여당 '무기' 될까
문제는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가 답보를 거듭했다는 점이다. 당초 정부안은 윤 대통령의 공약대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한 뒤 기존 여성가족부 기능 중 노동 관련 부분은 고용노동부로, 양성평등과 인구·가족·아동·청소년 관련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2022년 10월 정부조직 개편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협의 후 소속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여야 간 협상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여성 정책 등을 담당할 새 부처의 '이름'이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민주당은 해당 부처의 이름에 반드시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의 본래 취지가 흐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로도 여야는 여성 정책 수립·추진을 담당할 정부 기구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여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성가족부 폐지 부분만 제외한 채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때 여당의 핵심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는 어느덧 '잊힌 공약'으로 전락했었다. 여소야대 국면 속, 정책 추진력을 잃은 여당이 장기간 관련 사안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서야 먼지 쌓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표심을 잡기 위한 '무기'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여당 측의 공약 미이행으로 한 차례 '쓴맛'을 본 20·30대 남성 지지층은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