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뉴욕 연은 총재 "하반기 관세 충격 전망" 연말까지 물가 1%포인트 상승 예상 6월 CPI부터 영향 본격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대대적인 관세 부과를 예고한 이후 실제 관세 부담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와 함께 하반기 관세 정책이 본격화화면 경기 침체 속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NPR "관세는 결국 세금"
1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관세는 결국 세금”이라며 “미국 소비자들이 그 부담을 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례 없는 수준의 관세를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거의 모든 국가와 지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최소 10% 이상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무인도에서 수입되는 물품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이후 관세율은 중국산 제품을 중심으로 인상됐다가 하락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자동차와 구리 등 특정 품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품목별 관세도 도입됐다. 뉴욕 증시가 급락하자 일시적으로 일부 조치가 유예되기도 했다.
NPR은 “현재 대부분 수입품에 대해 여전히 10% 이상의 고율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그 결과 미국 소비자들이 언제쯤 가격 인상이라는 형태로 그 부담을 직접 경험하게 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NPR에 따르면 미국 경제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관세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일정 부분 마진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해 왔지만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재고 비축·인상분 자체 흡수로 물가 영향 최소화
실제 1,000억 달러(약 139조원)에 달하는 관세가 미국 재무부에 징수된 지금까지도 물가 상승은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관세는 미국 수입업자가 물건을 미국 국경에 들여올 때 납부한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반영돼 인플레이션 지표에 영향을 주지만, 공식적인 인플레이션 수치는 오히려 예상을 하회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BLS)의 최근 수치는 연 2.4%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도 수입물가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세가 물가에 반영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전국납세자연합(National Taxpayers Union)은 "트럼프의 10% 관세는 4월부터 시행됐고, 철강과 알루미늄은 3월, 중국산 제품은 30% 관세가 3월부터 적용됐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나 개인소비지출(PCE) 지표는 5월까지의 데이터만 포함하고 있어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재고를 쌓은 점도 물가 상승 압력을 제한했다. 관세 부과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기업들이 관세 인상 전에 수입을 급증시켰고, 이로 인해 재고가 쌓였다. 실제 수입 급증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일시적으로 마이너스로 만들기도 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앨라이언스번스타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릭 위노그라드(Eric Winograd)는 "아직은 재고를 소진 중이기 때문에 가격 인상 요인이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즉 관세에 따른 충격이 몇 달간 유예된 것일 뿐 결국 고율의 수입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CPI 물가, 2.7% 폭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위원의 최근 발언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16일 존 윌리엄스(John C. Willams)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뉴욕비즈니스경제협회 연설에서 “현재의 완만하게 제약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우리의 이중 책무를 달성하는 데 적절하다”며 “지금은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경제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총재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방위적으로 부과한 고율 수입세의 여파에 주목했다. 그는 “관세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뚜렷한 수치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몇 달 안에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관세 때문에 올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물가상승률이 약 1%포인트 오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가 15일 발표한 6월 CPI 보고서를 보면 관세로 인한 가격 압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미 노동부는 6월 미국 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 전달 상승률(2.4%)보다 오름폭이 더 커졌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3% 이다. 순간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지난해 대비 2.9% 상승했다.
미국의 관세정책 불확실성과 재정적자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물가가 다시 오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연준이 7월 기준금리 인하를 포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준금리를 4.25∼4.5%로 동결할 가능성을 99% 내외로 보고 있다. 앞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불확실성을 거론하며 관세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