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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웹소설 시장 총규모 55조원" 중국 문학연구소 보고서 발표 자극적인 콘텐츠·소재, 내수 시장 필두로 급성장한 중국 웹소설 내수 성장 한계 부딪힌 국내 웹소설, 이제는 세계로 날아오를 때
지난해 중국 웹소설 시장이 총 55조원(약 412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26일 중국사회과학원(CASS) 산하 문학연구소는 '2023년 중국 웹소설(온라인 문학) 발전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발표, 차후 웹소설이 △온라인 게임 △영화 △TV 시리즈 등과 함께 중국 문화 수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반면 국내 콘텐츠 업계는 중국 웹소설 콘텐츠가 장르적·질적 한계로 인해 '저품질 대량 판매'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매출만 7조, 덩치 불리는 중국 웹소설 시장
문학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웹소설 시장 규모는 56억 달러(약 7조4,763억원)에 달했다. 이는 2022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수치다. 문학연구소는 시장 성장에 따라 웹소설 지식재산권(IP)의 시장 가치도 361억 달러(약 48조1,716억원)까지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웹소설 시장의 총규모가 자그마치 55조원을 뛰어넘는다는 시각이다.
실제 중국 웹소설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내 웹소설 작가로 등록된 창작자의 수는 2,405만 명에 달하며, 2023년 한 해에만 420만여 개의 신작이 발표됐다. 웹소설 독자는 총 5억3,7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 대비 9% 증가한 수치자, 중국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문학연구소 통계 기준). 문학연구소 측은 중국어를 구사하는 화교와 외국인 독자까지 합치면 중국 웹소설 수요자가 훨씬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중국 웹소설 시장 성장의 비결로 AI를 지목했다. AI가 도입되면서 중국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AI 도입 이후 평균 번역 비용이 약 90% 저렴해졌고, 번역 효율성(번역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100배가량 늘었다고 주장했다. AI의 효율적인 번역으로 매년 200개 이상의 국가·지역에서 2억3,000만 명의 독자가 중국 기반 웹소설 플랫폼을 방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웹소설의 근본적인 한계
문화연구원이 자국 웹소설 수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 가운데, 국내 콘텐츠 업계는 중국 웹소설 콘텐츠의 '한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 인기 웹소설 장르의 수요층은 어디까지나 한정적이며, 장기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이다. 중국 웹소설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선협(仙俠, Xianxia)' 장르가 대표적인 예다.
선협은 도교(道敎, Taoism)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 판타지 장르로, 주인공이 수행을 쌓아 신선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문제는 선협물 내 등장하는 '신선'이 인간을 하대하는 악랄한 절대자라는 점이다. 신선이 되기를 꿈꾸는 대다수 선협 작품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을 저지른다. 독자가 이입해야 할 중심 인물이 영생, 강한 힘, 권력 등을 위해 비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중국 웹소설 특유의 감성은 세계 시장에서 오히려 반감을 살 가능성이 크다.
높은 수위와 폭력 등 수위가 높은 작품 내용·묘사 역시 문제로 지목된다. 허점 가득한 검열 구조 속, 다수의 중국 웹소설 작가들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일부 작가는 도를 넘어 아동성애(Pedophilia) 등 비인륜적인 소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아닌 정제되지 않은 자극적인 이야기로 소비자를 현혹, '비뚤어진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웹소설 경쟁, 관건은 시장의 '규모'?
국내 업계에서는 중국 웹소설 시장이 이 같은 한계를 넘어 급성장한 것은 '대규모 시장' 덕택이라고 본다. 자국의 막대한 내수 시장을 활용해 일차적으로 작품의 이름을 알리고, 이를 발판 삼아 점진적으로 해외 독자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웹소설 시장이 저품질 콘텐츠의 대규모 판매를 앞세워 급속도로 성장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내 웹소설 콘텐츠 역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국내 웹소설 시장은 이미 충분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춘 상태다. 최근 수년 사이에는 웹소설 콘텐츠가 웹툰, 드라마, 영화 등의 '원작 IP로 급부상, 줄줄이 콘텐츠 흥행을 이끌며 그 역량을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웹소설 분야 매출액은 약 1조390억원(약 7억8,000만 달러)에 그친다. 매출액만 7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중국 웹소설 시장에 비하면 상당히 부진한 성적이다.
성장 한계를 맞닥뜨린 국내 웹소설 업계 선두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에서 1인당 엔터테인먼트-미디어(E&M) 관련 지출 비용이 가장 큰 북미 시장 공략이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웹툰은 2020년 북미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Wattpad)'를 인수하며 북미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고, 2022년 프리미엄 웹소설 플랫폼 ‘욘더’를 출시했다. 카카오엔터 역시 여성향 장르가 강세인 '래디쉬(Radish)', 남성향 장르가 강세인 '우시아월드(Wuxiaworld)'를 인수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내수 시장 중심이었던 웹소설 업계가 글로벌 시장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양질의 국내 웹소설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기대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