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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 러시아 에너지 위기, 중국 리스크로 좁아진 유럽의 선택지 2030 디지털 목표 달성을 위한 인도와의 인재·기술 협력 필요성 무역을 넘어 전략적 동맹으로 확장되는 유럽의 협력 구상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관세 압박이 거세지고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와 중국‑러시아의 무제한 협력 선언까지 이어지면서 유럽의 숨통이 조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는 단순히 새로운 시장을 찾는 차원을 넘어, 장기 전략을 함께 짤 수 있는 동맹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뚜렷해졌다.
특히 EU가 2030년까지 추진하는 ‘디지털 10년(Digital Decade)’ 목표는 이를 더 시급하게 만든다. 유럽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 핵심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내부 자원만으로는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젊은 인구를 가진 인도는 EU가 디지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으로 손잡을 수 있는 파트너다.
최근 통상 환경 변화는 이 선택의 필요성을 더 크게 보여주고 있다. 2025년 7월 27일 미국과 EU는 무역 전쟁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EU산 제품 대부분에 1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 불과 나흘 전인 7월 23일, 인도와 영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인도 시장과 인재 파이프라인을 선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EU가 관세 압박을 견디고 디지털 10년 목표를 실현하려면 인도와의 협력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
EU가 고민하는 문제는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까지 가세해 압박을 가하는 상황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이다. 미국은 15% 관세를 사실상 고정했고, 러시아는 전쟁으로 유럽의 에너지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여기에 중국은 모스크바에 더 가까워지며 유럽의 산업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EU가 미국의 관세 압박을 줄이고 러시아·중국 리스크를 동시에 완화하려면 인도가 현실적인 해법이 된다. 인도는 반미가 아니라 다중 정렬 노선을 택해 미국과 첨단 기술, 방위 분야에서 협력하면서도 러시아산 원유를 일부 수입하고 있다. 이런 균형 노선 덕분에 인도는 어느 한쪽에 종속되지 않고, 유럽의 전략적 균형을 위한 파트너로 자리할 수 있다.
EU가 취해야 할 접근법은 명확하다. 인도에게 미국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할 게 아니라, 유럽에 필요한 연결고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교육, 인재 교류, 기술 협력 같은 분야부터 시작해 관세와 시장 개방 협상은 뒤따르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이렇게 해야 정권 교체나 국제 변수에도 협력이 지속될 수 있다.
지연의 대가는 더 크다
2023년 EU는 인도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상품 교역액은 1,240억 유로(약 182조 원), 서비스 교역액은 597억 유로(약 88조 원)에 달했다. 2022년 재개된 포괄적 협정 협상은 2025년 5월까지 11차례 진행돼 일부 기술 분야는 합의했지만, EU가 금융·투자 분야 규제를 협정에 포함하려는 데에 대한 인도의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협상이 늦어질수록 7월 23일 체결된 영국‑인도 FTA가 인도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은 커진다. 인도 정유사들은 여전히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가공하고 있고, EU는 최근 러시아산 원유가 제3국을 거쳐 역유입되는 것을 막는 제재를 발표했다. 이는 필요했지만, 단기간 무역 흐름에 혼선을 줄 수 있다.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 IMEC) 같은 대규모 인프라 구상도 완성까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그러므로 EU와 인도는 지금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 특히 인재 교류와 교육 협력부터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장기 계획이 구체화되는 동안도 협력이 멈추지 않고 쌓일 수 있다.
전략적 교육·인재 협약
EU가 미국의 관세 압박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려면, 가장 먼저 실행할 수 있는 결과물은 전략적 교육·인재 협약이다. EU는 이미 소단위 학위과정(마이크로 크리덴셜) 제도를 운영해 단기·맞춤형 교육을 국경을 넘어 인정하고 있고, EU‑인도 무역·기술위원회는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등 핵심 의제를 다루고 있다.
EU는 블루카드 제도를 통해 외국 인재의 취업 요건을 낮췄고, 인도는 AI와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며 관련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이 기반을 활용해 학위 상호 인정, 공동 교육 과정, 블루카드 패스트트랙, 배터리 재활용·전력전자·AI 안전·수소 시스템 같은 공동 연구 분야와 연계한 비자 제도까지 포괄하는 협약을 설계해야 한다.
EU는 2024년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 인력 1,030만 명을 고용했지만 2030년까지 970만 명이 더 필요하다. 인도 유학생 흐름도 증가세다. 2023/24 겨울학기 독일 대학에는 4만9,483명의 인도 유학생이 등록했고, 프랑스는 2030년까지 3만 명 유치를 목표로 한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매년 5만 명의 인도 유학생이 EU에서 졸업해 다수가 정보통신 분야에 남는다면 인력 부족을 빠르게 메울 수 있다.

주: 2024년 실제 ICT 전문 인력, 2030년 목표 인원, 목표 대비 부족 인원(X축), 인원수(Y축)
인재 협약이 만드는 더 넓은 이익
무역협정만으로는 EU 전체가 고르게 혜택을 보긴 어렵다. EU 분석에 따르면 협정이 체결돼도 경제적 이익은 80억~85억 유로(약 12조 원) 수준에 그치고 GDP 증가율도 0.03%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익 대부분은 몇몇 산업과 국가에 집중된다.
반면 인재 협약은 효과가 훨씬 고르게 나타난다. 남유럽과 동유럽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 장학금과 인재 배치를 우선 지원하고, 인재 이동을 현지 인력 재교육과 연결하면 모든 지역이 혜택을 받는다. 매년 2만 명 규모의 EU‑인도 공동 석사 과정과 산학 연계 박사 과정 2,000명을 운영하면 ICT 인력은 물론 연구 네트워크까지 확대된다. 비자 처리 속도, 전공별 등록 현황, 졸업생 정착률, 성별 비율 등을 투명하게 관리하면 인재 유입이 특정 국가나 도시로 쏠린다는 우려도 줄일 수 있다.
흔한 반론, 어떻게 답할까
일부에서는 인도가 러시아와 가깝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러시아는 인도의 원유 수입에서 35%를 차지했지만, EU 제재로 경유 수출은 차단됐고 인도의 조달 구조도 걸프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교육과 인재 교류 협약은 이런 에너지 변수와는 별개로 추진할 수 있다.

주: 러시아(40%), 이라크(19%), 사우디아라비아(12%), 아랍에미리트(10%), 미국(6%), 기타 국가(13%)
이민 정책이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블루카드 제도는 이미 자격 요건을 완화했고, 직군별 쿼터와 급여 하한, 귀국 경로까지 설정하면 인도의 인재 유출 우려와 유럽의 노동시장 불안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영국이 먼저 인도와 FTA를 체결해 EU가 뒤처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EU는 인재와 기술 표준 분야에서 여전히 우위를 확보할 기회가 있다. 유럽은 세계적 데이터 보호 체계와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인도의 실시간 계좌이체 결제 시스템(Unified Payments Interface, UPI)이 유럽 현지에서 빠르게 확산된 사례는 기술 협력이 얼마나 빨리 진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IMEC의 불안정성을 근거로 협력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인재 협약은 2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다. 장기 인프라 계획과 별개로 진행할 수 있으며, 오히려 지금 추진하는 인재·기술 표준 협력이 나중에 IMEC의 신뢰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협정을 기다리지 말고, 동맹을 먼저
EU가 선택할 길은 분명하다. 모든 관세 협상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람과 지식을 연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U‑인도 인재 협약은 미국의 관세 리스크를 줄이고 러시아·중국 의존도를 낮추며, 더 큰 무역 협정을 추진할 정치적 기반이 된다. 유럽이 다시 경쟁력을 증명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사람을 교육하고, 불러들이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 시작은 지금이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Necessary Ally: Why an EU–India Pact Must Outpace Tariffs and Outlast Russia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