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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APEC, 지정학적 위기와 다자주의 속에서 리더십 발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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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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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APEC 2023,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 아젠다 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공급망 위기 속 'APEC 역할론' 대두
21개 회원국 정상들, 글로벌 파트너십 촉진하는 공동 논의 강조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11월 제3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됐다. '모두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 창조(Creating a Resilient and Sustainable Future for All)'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갈수록 심화되는 지정학적 갈등과 기후 위기에 대응해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아젠다를 도출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 자리에서 각국 정상들은 APEC이 건설적인 논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향후 글로벌 파트너십을 촉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EC 2023 San Francisco in USA
사진=East Asia Forum

APEC, 이해관계자 참여 확대하고 상호연결과 포용 강조

APEC은 지난 1989년 11월 호주 캔버라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동의 번영을 위한 협의체로 출범했다. 그리고 4년 후인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상회의로 격상됐다. 1989년 12개국으로 출발한 APEC은 현재 미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면서 전 세계 인구의 40%, GDP의 59%, 교역량의 50%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의 지역협력체로 성장했다. APEC의 의사결정은 컨센서스 방식으로 이뤄지며 회원국의 자발적 참여와 비구속적(non-binding) 이행을 중시한다.

하지만 문제는 APEC이 회원국 간의 균열을 야기하는 정치적·지정학적 갈등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APEC 반대연합(NO to APEC)에는 1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해 △무력 침공과 전쟁 △무역협정 △노동자 권리 △기후 대응

하지만 문제는 APEC이 회원국 간의 균열을 야기하는 정치적·지정학적 갈등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APEC 반대연합(NO to APEC)에는 1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해 △무력 침공과 전쟁 △무역협정 △노동자 권리 △기후 대응 △신장 위구르·티베트의 인권 탄압 등과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APEC에서 성사된 무역 거래들이 전 세계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며 "APEC은 자유무역과 대기업만을 위한 협의체일 뿐 환경 문제나 일반 노동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제30차 정상회의에서는 행사장인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앞에 2만여 명이 모여 APEC에 항의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APEC 정상회의를 '국가 특별 안보 행사'로 지정해 경찰관을 배치하고 모스콘센터 주변에 3m 높이의 철제 울타리를 설치했다. 이렇듯 회의 기간 내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과연 APEC이 국제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파트너십을 조성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PEC도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래 들어 APEC은 미국의 주도하에 지역 내 비즈니스 커뮤니티와 생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를 강화하고 있다. 청년, 장애인, 원주민, 기업가, 시민단체와 학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하는 다자간 포럼을 통해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공동의 논의를 진행해 왔다. 지난 2021년에는 향후 20년의 비전과 이행계획으로 '아오테아로아(Aotearoa) 행동계획' 채택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 제고와 소통 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APEC은 이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경제 회복과 미래 성장에 대한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제30차 APEC 정상회의에서는 '모두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 창조'라는 아젠다에 따라 △공급망의 회복탄력성 △디지털 무역과 디지털 연결성 △중소기업의 성장을 위한 기회 제공 △기후 변화와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과 같은 주요 이슈에서 진전을 보였다. 이외에도 △식량 안보 △보건 △반부패 △디지털화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돼 온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등도 주요 과제로 논의됐다. 그리고 이 모든 의제들에서 '상호 연결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PEC'을 강조했다.

다자주의 시스템 속에서 공통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주력

현재 APEC은 지난 몇 년간 이어온 주요국 간의 무역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분쟁 등으로 인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앞서 언급한 국제사회 균열과 긴장이 APEC 회원국 간의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두고 인권, 평화, 안보의 측면에서 회원국 간 이견이 발생하면서 직접적으로 회의의 의제로 다뤄지지 않은 이슈에서 국가 간 갈등이 야기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93년 정상회의로 격상된 최초의 회의를 개최했는데, 당시 미국은 태평양 지역 내 모든 국가들의 경제적 협력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뒀고 APEC 정상들도 경제성장을 위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에 집중했다. 이어 지난 2011년 하와이에서 진행된 APEC 정상회의에서는 '완벽한 지역경제(Seamless Regional Economy)'를 주제로 역내 무역 자유화, 규제 개혁, 녹색성장 촉진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은 하와이 이후 12년 만에 제30차 APEC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회의는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해 미국이 다자주의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때 전후 경제체제에서 다자주의를 지지해 왔던 미국은 이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양자간 혹은 다자간 무역협정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채택하기도 했다.

미국은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APEC의 비전에 집중하면서도 자국의 이익과 관련된 협정에 대해서는 입장을 분명히 하거나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불가피하게 개입한 다자간 협정에는 미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안부터 지리적 정세에 관한 내용까지 다양하다. APEC의 역사를 보면 과거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이슈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21개 회원국 모두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시스템과 규칙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무역체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2023 APEC 정상 골든게이트 선언'을 채택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과 관련한 내용은 일부 참여국의 반대로 공동 선언에서 제외돼 별도 의장 성명으로 대체됐다. 골든게이트 선언은 APEC이 개별 국가 간의 갈등보다는 세계 공통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음을 의미하며 별도 의장 성명은 공동선언에 채택되지 않는 사안들도 추후 논의와 개입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뜻한다.

특히 기후 변화의 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는 21개국 정상 모두가 인류 공동의 문제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을 약속했다. 회원국들은 골든게이트 선언을 통해 '2030 탄소 제로'를 위해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대하고 저배출 기술을 개발하는 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또한 차량·항공·해상의 제로 운송과 항만 등 무역 인프라의 탈탄소 가속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같은 합의를 이끌어낸 의장국 미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웰빙과 환경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미래 에너지 정책으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Just Energy Transition)'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고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환경 친화적이면서도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회의 기간 중 포럼을 열고 영향력 있는 기업들을 초청해 산업계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34년 만에 미·중 정상회담 성사, 양국 관계 방향성 제시

이밖에 부문별 갹료회의에서도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농업장관회의에서는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식량 안보를 개선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 방안을 논의했고 그 결과 '지속가능한 농식품 시스템을 통한 식량 안보 달성 원칙'을 채택했다. 해당 원칙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식량 안보 관련한 정책, 관행, 규정 개발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각국 교통장관들은 저공해·무공해 경상용차와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의 개발·확산, 저공해·무공해 해상 운송과 항만 탈탄소화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1989년 이후 34년 만에 미국과 중국 정상간의 만남이 성사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장기간 갈등을 이어온 양국 관계의 방향성을 전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관계에 대한 상호 인식 △경제·통상 분야 이슈 △글로벌·지역 현안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고 △군사 소통 △불법 마약 제조·유통 방지 △인공지능(AI) 활용 △기후 변화 대응 △인적교류 분야에서 협력을 재개·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다만 양국간 핵심 이슈인 첨단기술, 수출규제, 공급망 등 경제 안보와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입장차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물론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당장 실효성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주요국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인 긴장과 혼란에 대한 대응전략을 조율할 수 있는 직·간적접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은 향후 미·중 관계에서 갈등 방지와 상호 이익을 위한 협력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서 미국 혹은 중국과의 소통 채널 확대, 관계 재정립, 갈등과 협력의 균형을 모색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지정학적 이슈가 계속됐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는 미국 등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인 만큼 지정학적 이슈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12년 만에 미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가 끝난 지 4개월 여가 지난 지금, 오는 11월 페루 리마에서 개최되는 차기 정상회의에서는 주요 이슈에 대한 진전을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APEC 2024'의 의제로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무역과 투자, 글로벌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제도적 혁신, 탄력적 발전을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 등 논의될 예정이다. APEC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격이 높고 광범위하며 영향력 있는 경제 협력체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대화를 촉진해 건설적인 공동 논의의 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갈등과 분열로 국제 협력이 와홰될 위기에 처한 지금 APEC의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원문의 저자는 레베카 스타 마리아(Rebecca Sta Maria) 싱가포르 APEC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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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스타 마리아/사진=APEC

영어 원문 기사는 The value of APEC at a time of growing international turmoil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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