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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루트, 직장인 퇴사 인식 조사 직장인 과반 "지금 조용한 퇴사 중" 직원도 기업도 부정적 영향 커
직장인 2명 중 1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며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한 퇴사란 직장에서 퇴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며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월급만큼만 일하고, 회사에 애정 없어
26일 인크루트가 직장인 1,097명을 대상으로 조용한 퇴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과반이 ‘현재 조용한 퇴사 상태’(51.7%)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매우 그렇다’가 12.7%, ‘대체로 그렇다’가 39.0%였다. 연차별로는 8년차~10년차(57.4%)의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5년차~7년차(56.0%), 17년차~19년차(54.7%) 등 순이었다.
조용한 퇴사의 주된 이유로 ‘연봉과 복지 등에 불만족해서’(32.6%)가 꼽혔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에 열의가 없어서’(29.8%)와 ‘이직 준비 중’(20.5%) 등의 영향도 상당했다. 동료가 조용한 퇴사 중인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65.8%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실제 퇴사할 때는 아무도 모르게 이직처를 만들어 놓고 퇴사한다는 ‘계획적인 퇴사형’(56.8%)이 가장 많았다. 친한 동료에게만 말하고 퇴사하는 ‘소곤소곤 퇴사형’(27.6%), 평소처럼 출근했다가 갑자기 퇴사하는 ‘충동적인 퇴사형’(11.0%), 평소 퇴사 의사를 여기저기에 털어놓고 퇴사하는 ‘시끄러운 퇴사형’(3.6%) 등도 있었다.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해고를 당하는 과정이나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시끄러운 퇴사’가 유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기업의 이름을 미공개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44.3%에 달했다. ‘상관없다’는 31.4%, ‘기업명 공개와 상관없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은 24.2%였다.
조용한 퇴사란?
조용한 퇴사란 실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 방식을 뜻한다. 지난 2022년 7월 미국 20대 엔지니어인 자이들 플린이 자신의 틱톡 계정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사용이 확산됐다. 당시 플린은 이 단어를 소개하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업무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사 생활에만 매진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퇴사와 같은 맥락으로 ‘워라밸’ ‘소확행’ ‘욜로’ 등의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말하며 ‘소확행’은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히 실행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한국은 여기에 조용히 이직할 회사를 찾아보는 것까지 추가된다. 현재의 오피스 이탈 현상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이 이직이나 사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잦은 이직 경험이 조직에 적응을 못 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했다면, 오늘날 이직은 내가 원하는 업무 조건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커리어 개발 과정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한 퇴사 택한 직원, '조용한 해고' 당할 수도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먼저 업무 생산성 저하의 위험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들은 기대하기 어렵다. 조용한 퇴사가 가진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이같은 분위기가 바이러스처럼 조직 내에 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직원들이 조용한 퇴사를 실천하면서 상대적으로 업무에 소홀할 경우, 다른 팀원들은 추가 보상 없이 더 일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만큼 조용한 퇴사 흐름에 동참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조용한 퇴사는 기업에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근로자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용한 퇴사를 실천하는 직원은 경영진과 팀원도 단박에 알아차리기 쉽다. 만일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때 이런 이유로 실적이 부족한 직원들은 가장 먼저 인원 감축 명단에 올라가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서는 업무 재배치 등을 통해 저성과 직원의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는 '조용한 해고'가 글로벌 기업 사이에 확산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디다스, 어도비, 세일즈포스, IBM 등이 이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대량 감원 대신 조용한 해고를 선택, 채용→해고→재채용 순환과정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구조조정 효과는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입장에선 인력 재배치를 기반으로 한 조용한 해고로 이런 막대한 구조조정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이 해고를 자제하는 대신 인력 재배치 등 다른 방법을 통해 자발적 퇴사를 유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