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천문학적 R&D 투자 단행한 中, 제조업 넘어 과학기술 강국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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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난해 R&D에만 715조원 쏟아부어 "독일, 일본, 미국 뛰어넘겠다" 中 산업계, 기술 선점에 속도 AI·로봇 중심으로 자동화되는 제조업, '다크 팩토리'가 뜬다

중국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이 7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중심 성장 전략을 채택해 오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노선을 전환,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R&D에 거금 투입한 中
지난달 30일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국가통계국과 과학기술부, 재정부는 지난달 29일 공동 발표한 '2024년 전국 과학기술경비 투입 통계 공보'를 통해 지난해 전국 R&D 투자가 3조6,326억8,000만 위안(약 71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9%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2024년 한국 정부의 전체 예산(656조6,000억원)을 훌쩍 웃도는 수치이다. 총액 기준으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은 2.69%로 세계 12위 수준이다.
지역별 R&D 규모는 중국의 경제 중심지인 광둥성이 5,099억 위안(약 100조5,980억원)으로 가장 컸다. 2위는 4,597억5,000만 위안(약 90조5,000억원)을 투입한 장쑤성이었다. 장쑤성은 120만 명이 넘는 연구 인력과 175개의 고등교육기관을 보유 중이며, 제조업 부가가치가 전국의 14.1%, 전 세계 4.2%를 차지할 만큼 산업 기반이 탄탄하다. 이어 베이징(3,278억 위안), 저장성(2,901억 위안), 산둥성(2,597억 위안) 등 순으로 R&D 투자 금액이 많았다.
분야별 투입 비용을 살펴보면 실험개발경비가 2조9,520억 위안(약 582조4,000억원), 응용연구가 4,305억 위안(약 43조9,330억원), 기초연구가 2,500억 위안(약 49조3,220억원)이었다. 각각 전년 대비 10.7%, 17.6%, 7.6% 늘었다. 주체별로는 기업이 2조8,211억 위안(약 556조5,750억원),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4,231억 위안(약 83조4,730억원), 대학이 3,065억 위안(약 60조4,700억원)을 기록했다. 이들의 R&D 투자 금액은 전년 대비 10% 안팎으로 증가했다.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노선 전환해
이처럼 중국이 R&D에 힘을 싣는 것은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현재 중국은 2035년까지 독일·일본을 추월하고, 공산당 정권 100년인 2049년엔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군사력이 아닌 산업 굴기다. 기업이 첨단 미래 기술 개발을 도맡고, 정부가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 같은 로드맵 위에서 '기술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일례로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는 4G 시대까지만 해도 후발 주자였지만, 여타 기업보다 앞서 5G 표준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며 5G 기술 구현에 반드시 필요한 표준 필수 특허(SEP)를 9,597건 확보했다. 이는 2위 퀄컴(8,046건)을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현시점 5G 기기를 만드는 거의 모든 기업이 화웨이에 로열티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국의 산업 굴기 노력이 점차 빛을 발하는 중이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른바 ‘단수 쌓기’ 경쟁에 몰두하는 사이, 중국 YMTC는 전혀 다른 공법인 ‘본딩’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기술을 추격하는 것만으로는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 아예 새 장을 연 것이다. 현재 업계에서 본딩 기술은 단숨에 판을 뒤집을 만한 ‘게임 체인저’의 가능성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중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 CATL 역시 2021년 21세기 연구소 설립을 기점으로 배터리 전용 자체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하고, 컴퓨팅 센터를 구축해 나트륨이온·전고체·리튬-금속 등과 같은 차세대 후보 물질 및 조합을 탐색해 왔다. 그 결과 CATL은 기존 제품 대비 2배 이상의 에너지 밀도와 수명을 보유한 리튬-금속 전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양극재·음극재를 설계하고, 고체 전해질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등 AI를 새로운 물질 설계·합성·검증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불 꺼지는 中 공장들
R&D로 중국 산업계의 중심축이 옮겨 가는 가운데, 현지 제조업계에서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가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는 추세다. 다크 팩토리는 기존에 사람이 수행하던 조립, 검사, 물류 등 대부분의 작업을 다관절 로봇을 포함한 자동화 설비가 처리하는 24시간 무인 공장이다. 인력이 거의 쓰이지 않다 보니 공장의 조명을 꺼둘 수 있어 이 같은 명칭이 붙었다. 공장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는 실시간으로 제조 공정을 모니터링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며,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의 개입 없이 공정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고도화된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생산 과정의 비효율을 찾아내고 공정을 최적화한다.
다크 팩토리 전략을 채택한 대표적 업체로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가 꼽힌다. 샤오미는 지난해 베이징 창핑에 차세대 스마트폰 제조 공장을 열었다. 투자 금액은 약 5,000억원에 달하며, 연간 생산 능력은 스마트폰 1,000만 대 규모다. 샤오미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만드는 이 공장에서는 지능형 로봇이 대부분의 작업을 24시간 내내 처리해 1초에 1대씩 완성품을 내놓는다. 샤오미는 자체 개발한 스마트 제어 시스템을 통해 인쇄회로기판(PCB) 조립, 부품 검사, 최종 테스트까지 모든 과정을 자동화했다.
다른 중국 기업들 역시 다크 팩토리에 준하는 자동화 기술을 구현 중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의 시안 공장은 로봇 핸들링 시스템과 무인운반차(AGV) 등을 활용해 용접과 도장, 배터리 팩 조립 등 생산 공정의 97%를 자동화했다. 화웨이 역시 지난 4월 독일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AI, 클라우드, 차세대 무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마트 제조 기술을 공개하면서 "지능형 공장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