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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에 이어 OLED 시장도 중국에 자리 내줬다
조선, 철강, 배터리, 태양광 분야도 이미 중국이 잠식
미중 간 관세전쟁 본격화, 중간재 수출 위축 우려
중국 기업들이 석유화학을 비롯해 조선, 철강, 배터리, 태양광 분야도 낮은 가격을 앞세워 수요를 쓸어 담고 있다. 최근 국내 디스플레이업계의 ‘최후의 보루’로 꼽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도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첨단 업종마저 하나둘 중국에 잡아먹히고 있다.
조선·철강·태양광도 중국 손아귀에
14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조선산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은 90.6으로 처음 한국(88.9)을 앞질렀다. 연구개발(R&D), 설계, 조달, 생산, 서비스 등을 종합한 조선업 경쟁력에서 글로벌 넘버원 자리에 오른 것이다. R&D만 따로 떼보면 한국(92.6)이 중국(89.8)을 앞섰지만, 그 격차는 계속 좁혀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글로벌 시장을 나눠 가졌던 OLED 분야도 중국의 거센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시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BOE, 비전옥스 등 중국 기업들은 세계 중소형 OLED 시장에서 53.4%(출하량 기준)를 차지했다. 작년 4분기 44.9%였던 점유율을 확 끌어올려 처음 한국을 앞선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55.1%에서 46.6%로 떨어졌다. 화웨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자국산 OLED를 스마트폰에 장착한 영향이 컸다.
태양광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대다수 기업이 궤멸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이다. 최근 중국은 태양광 설비에 투입되는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 등 생산량을 급격히 늘렸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9~10월 두 달간 폴리실리콘 생산량은 23만6,60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0% 증가했다. 웨이퍼 생산량은 8,795만kW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고, 결정질 실리콘 태양전지 생산량은 8,381만kW로 전년 동기 대비 78.7% 확대됐다.
이에 반해 국내 태양광 업계 상황은 처참하기만 하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해 하반기 태양광 설비 경쟁입찰을 진행했지만 업체들이 대거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공고 물량인 100만kW의 6.6%에 불과한 6만6,000kW만 참가해 입찰이 미달됐다. 이 가운데서도 낙찰된 것은 175개 발전소 총 6만kW뿐이다. 이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지난 2022년 상반기에는 총 200만kW 공고 물량에 절반 수준인 104만3,000kW 물량이 응찰했지만 하반기에는 아예 입찰이 중단됐었다. 다시 재개된 지난해 상반기 입찰에서는 공고 물량이 1년 전보다 반토막 난 100만kW로 줄어든 가운데 29만8,000kW 물량에 입찰해 27만2,000kW 총 988개 발전소가 낙찰된 바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이미 '중국판'
배터리 시장은 아예 ‘중국판’이 돼버렸다. 대표 기업인 닝더스다이(CATL)는 올 1분기 글로벌 시장에 60.1GWh를 공급하며 전년 동기 대비 31.9%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도 2.9%p 증가한 37.9%를 기록하며 1위를 유지했다. 주요 공급사인 베이징자동차, 상하이자동차, 창안자동차, 지리자동차, 리오토 등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테슬라,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의 전기차 판매 증대 영향이 컸다. 최근엔 샤오미의 전기차 'SU7'에도 배터리를 판매, 공급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BYD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1.9% 증가한 22.7GWh를 공급하며 글로벌 2위에 올라섰다. 시장 점유율은 14.3%로, 3위인 LG에너지솔루션과의 격차를 지난해 1분기 0.2%p에서 0.7%p로 벌렸다. 이에 따라 CATL과 BYD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합산은 52.2%에 육박한다. 최근엔 태국을 중심으로 현지 공장 가동을 본격화하고 있어 중국 외 글로벌 점유율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면 국내 배터리셀 3사의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2.8%포인트(p) 하락한 23.5%를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년 동기 대비 7.8% 성장한 21.7GWh를 공급하며 글로벌 3위로 내려앉았다. 주요 공급처인 테슬라의 '모델3', '모델Y' 판매량이 지난해 1분기보다 10%가량 줄었고, 현대차 '아이오닉6' 판매도 저조했다.
미국의 '수퍼관세', 한국에 불똥 튈 수도
이런 가운데 미중 간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번 관세 인상 핵심은 중국산 미래 첨단산업 제품과 주요 광물에 집중돼 있다. 올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서는 기존 25%의 관세를 100%로 인상하고,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은 7.5%의 관세를 25%로 올리기로 했다. 천연 흑연, 영구 자석의 관세율은 0%에서 2026년 25%로, 그 외 핵심광물의 관세율은 0%에서 올해 25%로 상향 조정된다. 사실상 미래 산업의 완성품은 물론 핵심 원자재에 '관세 폭탄'이라는 전방위 규제에 나선 셈이다.
우리 수출 산업 중 가장 우려되는 부문은 중간재 수출이다. 중국은 한국에서 철강·반도체·이차전지 등 중간재를 수입한 후 완제품을 만들어 다른 국가로 수출한다.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이 80%를 웃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관세 폭탄 등을 통해 중국에 대한 무역 장벽을 끌어올리면 중국산 제품에 쓰이는 한국산 중간재 수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미중 간 1차 관세 전쟁이 불거졌던 2019년 당시 국내 수출은 전년 대비 10.3% 줄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건설 경기 부진으로 직격탄을 맞은 철강 산업의 경우 대중 수출마저 줄어들면 돌파구를 찾기 더욱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발 글로벌 공급과잉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수출을 위해 제조한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한국 등 대체 시장으로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내수 부진으로 자국 재고가 급격히 늘자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재는 물론 소비재까지 헐값에 밀어내는 수출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내 전자상거래 플랫폼 1위 업체인 쿠팡은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업체의 공습으로 올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61% 급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