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탈통신' 속도 내는 SKT, 투자 자금 마련 착수
연이어 자산 매각하는 SK 계열사들, 원인은 지주사에?
삐걱이는 SK 재무 구조, 지출 느는데 수익은 '지지부진'
SK텔레콤(이하 SKT), SK하이닉스 등 SK그룹 계열사가 줄줄이 자산 유동화를 시도하고 있다. SK의 재무 상황이 눈에 띄게 악화한 가운데, 각 계열사가 자산 매각을 통해 적극적으로 현금을 확보해 나가는 양상이다. SK 역시 자산유동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며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T, 자산 유동화 가능성 시사
8일 SKT 측은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인공지능(AI)을 앞세운 '탈통신' 가속화를 선언, 본격적으로 AI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양섭 SKT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성장을 위한 투자와 주주 환원 정책이 밸런스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며 "미래 성장 투자를 위한 여력 확보를 위해 자산 유동화, 투자 효율화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해 투자 리소스를 창출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CFO는 "설비투자(CAPEX)로 약 3조원, 주파수 할당 대가와 이자 비용 등에 1조~2조5,000억원을 사용하면 1조원 정도가 캐시 플로우(현금 흐름)로 남는다"며 "여기에 7,000억원 이상을 현금 배당에 집행하다 보니 성장을 위한 투자에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투자를 위한 자금이 충분치 않은 상황인 만큼, 자산 매각 등을 통해 AI 성장을 위한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같은 날 발표된 SKT의 실적 자료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SKT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835억원 수준이다(연결 기준).
이에 업계에서는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재무 상황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자산 유동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KT의 자금 확보 움직임이 단순 AI 투자금 확보를 위한 전략이 아닌 그룹의 '생존'을 위한 자구책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 재무 상황 '비상'
실제 SK㈜의 총차입금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84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20년(48조3,000억원) 대비 74%가량 폭증한 수준이다. 지난해 부채 비율과 차입금 의존도는 각각 165.8%, 40.7%에 육박했다. 재무 구조 악화의 원인으로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 투자 지출이 지목된다. SK 측은 2021년 첨단 소재, 바이오, 그린, 디지털 등 4대 사업 중심의 신성장 계획을 발표한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투자를 이어온 바 있다.
그룹 재무 상황이 눈에 띄게 악화한 가운데, 기존 주력 사업인 △반도체 △배터리 △통신 등 부문에서는 매년 대규모 투자금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 부문인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 투자에만 약 14조원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올해 7~8조원, SKT는 2조7,000억원 수준의 설비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SK 산하에 막대한 투자 지출을 메꿀 만한 '캐시카우' 계열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사실상 SK의 유일한 활로라는 분석마저 제기된다.
실제 SK는 자산 유동화를 통한 재무 상황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초, SK는 자산유동화 관련 4개의 TF를 조직한 바 있다. 최근 5년간 SK그룹에서 발생한 투자를 일괄 점검한다는 구상이다. TF는 반도체, ICT 플랫폼, 그린에너지 등 투자 분야에 따라 분류되며, 국내외를 막론한 SK그룹의 포트폴리오 전반을 평가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계열사들도 유동성 확보 나서
SK그룹 산하 계열사들도 적극적인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어피너티를 선정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매매 예정 금액은 8,500억원 내외다. SK렌터카는 롯데렌탈의 뒤를 잇는 국내 렌터카 시장 점유율 2위 사업자로, 보유 중인 부채 2조원을 포함한 전체 기업가치만 3조원에 달한다.
8일에는 SK매직이 사업 구조 재편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가스레인지 △전기레인지 △전기오븐 등 3개 품목을 경동나비엔에 영업 양도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이후 4개월 만에 관련 논의가 진전된 것이다. 양도가액은 370억원이며, 양도일자는 9월 30일이다.
같은 날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중국 우시법인(SK하이닉스시스템IC 우시)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중국 국영기업 우시산업발전집단(WIDG)에 우시법인) 지분 21.33%를 2,054억원에 넘기기로 했다. 이후 WIDG는 SK하이닉스시스템IC 우시가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28.6%를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