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주택 가격 뛰는데 금리 내리면 큰일" 12회 연속 금리 동결한 금통위
尹 정부 부동산 규제 완화·정책금융 확대가 발목 잡았나
박상우 국토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엇갈린 시선'
한국은행 내부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수도권 집값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부양 정책이 한국은행의 피벗(Pivot, 통화 정책 전환)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 가격 상승세 경계하는 금통위
30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7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다수는 물가 안정세와 내수 부진에도 불구, 급등하는 집값과 가계 부채를 경계하며 금리 인하를 주저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통위는 이달 11일 개최된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2회 연속 만장일치 의견으로 3.5%로 동결한 바 있다.
우선 대다수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결정의 우선 고려 요소인 ‘물가’가 안정화됐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 수준, 일반인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3% 수준으로 하락했다”며 “물가가 전망 경로를 따라 둔화하면서 내년 하반기에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만 금통위원들은 피벗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한 위원은 “물가 측면에서의 피벗 위험은 상당폭 낮아진 것으로 평가하나, 주택 가격 상승 폭 확대로 인한 금융 안정 측면에서의 피벗 위험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 가격 상승세, 주택 매매 거래량 증가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잔액 확대 등을 우려한 것이다. 이 위원은 “과거 경험상 주택 가격과 가계부채 규모와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주택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부채가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일부 위원은 이 같은 주택 가격 상승세가 겨우 가라앉은 물가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주택 가격 상승은 가계부채 증가뿐 아니라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소비의 제약과 함께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가계가 보유한 유동성이 늘어난 가운데, 최근 주택 매매 거래가 실수요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주택 매매 가격이 대출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尹 정부의 부동산 부양 정책
시장에서는 최근 수년간 윤석열 정부가 쏟아낸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들이 한국은행의 피벗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수개월째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 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부 지역의 부동산 시장을 과하게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넷째 주(22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6% 상승하며 지난주(0.05%) 대비 상승폭을 키웠다. 수도권(0.13%→0.15%) 및 서울(0.28%→0.30%)이 전반적인 상승세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18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윤 정부의 대표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으로는 지난 1월 발표한 '1·10 부동산 대책'이 꼽힌다. 정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올해부터 2년간 준공한 전용면적 60㎡ 이하이자 6억원(수도권 기준·지방 3억원) 이하 신축 주택은 취득세·양도세·종부세를 산정할 때 주택 수에서 완전히 제외하도록 했다. 일종의 감세 혜택이다.
이를 통해 재건축 안전진단이 사라지고,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의 건축 제한이 크게 완화되며 주택 정비 문턱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대출 제한 역시 완화됐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이후 부각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리스크 해소를 위한 문을 열어둔 것이다. 당시 정부는 25조원 규모 대출 보증금 제공을 약속했고, 고금리 PF 대출을 저금리로 대환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대출 관련 규제도 답보 상태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 방지를 위해 지난해부터 연 30조~40조원 규모에 달하는 각종 저금리 주택 대출을 공급한 바 있다. 당초 이달부터 제2금융권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었던 대출 한도를 줄이는 규제의 시행 시기를 갑자기 9월로 늦추기도 했다. 실수요자들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움직임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 도입을 돌연 연기한 것이다. 정부의 느슨한 대처 속 가계대출 잔액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 25일 기준 557조4,116억원에 육박한다.
국토교통부-한국은행 '입장 충돌'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부동산 시장 과열의 가능성이 고개를 든 가운데, 부동산 정책 전반을 이끄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과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장관은 지난 11일 국토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지금의 아파트값 상승세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시적 흐름”이라며 “현재 우리나라 경제 대내외 여건을 보면 집값이 과거처럼 폭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이 총재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마친 뒤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 과열을 향한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졌다”며 “잘못된 신호를 줘서 주택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정책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금통위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서 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도 "가계부채가 늘고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불협화음' 속 금리 인하 시기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피벗 이후 부동산 경기과열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물가가 안정되고는 있지만, 정부의 부동산 시장 부양 기조가 꺾이지 않는 이상 금리 인하 시점은 시장의 기대보다 더욱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