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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HBM 수요에 맞춰 全 사업장 설비 계획 수정 착수
범용 D램 공급 부족 우려 대응, 평택 4공장에 전용 생산라인 구축
단기로는 HBM, 장기론 CXL이 '차세대 메모리 사업'의 핵심 축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를 공급하기 위한 양산에 돌입했다. HBM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첨단 D램 전초기지에 후공정 라인을 설립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화성 17라인서 'HBM3' 생산 시작
22일 IT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의 8단 HBM3 퀄 테스트(품질 평가)를 통과하고 화성사업장 17라인에서 HBM 전용 D램 생산에 착수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한다고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BM3는 인공지능(AI) 반도체 1위인 엔비디아가 지난해부터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를 위해 탑재하기 시작한 메모리반도체다. 현재 HBM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은 SK하이닉스로, 엔비디아에 단독으로 공급하면서 독보적 1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이번 양산을 시작으로 HBM 선두인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는 HBM 생산 능력을 주요 D램 공장이 있는 화성·평택 전 사업장에 걸쳐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HBM용 D램을 수직 결합하는 패키징 설비를 기존 천안 사업장에 더해 추가 증설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삼성은 기존 D램 라인을 HBM 라인으로 전환하면서 범용 D램 수요에 제때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평택 사업장의 신규 팹인 P4를 D램 전용 라인으로 구축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P4는 2층 구조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으로, 기존에는 이곳의 1층을 낸드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으로 나눠서 활용하기로 했지만 계획을 바꿔 D램 설비 전용으로 만든다. P4 파운드리 공간에 갖춰질 D램 장비는 내년 상반기부터 반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HBM3E 12단에 쏠리는 눈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를 본격 공급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제 업계의 관심은 삼성이 시장 판도를 바꿀 HBM3E 12단 제품을 내달 엔비디아에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3E 8단은 물론 HBM3E 12단 제품에 대해서도 엔비디아 퀄 테스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HBM3E 12단 제품은 차세대 HBM인 'HBM4' 직전 세대로 전체 HBM 시장의 선점 여부를 좌우할 핵심 모델로 꼽힌다. HBM3E 12단 제품은 실리콘 관통 전극(TSV) 기술로 D램 메모리 칩을 12단까지 쌓은 제품으로, 업계 최대 용량이다. 특히 HBM3E 12단 제품은 아직 엔비디아에 공급된 사례가 없는 만큼 내달 품질 검증을 끝내 공급에 성공할 경우 차세대 HBM 공급에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보다 우위에 설 수 있 것으로 전망된다.
CXL 기술에도 공들이는 삼성, 경쟁사와 기술 격차 축소 기대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하반기 엔비디아의 HBM3E 품질 테스트까지 모두 통과하고 양산에 들어가면 메모리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 경우 영업이익 면에서도 SK하이닉스를 크게 치고 나갈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2분기에 HBM3E 공급 없이도 영업이익 6조원을 기록했는데, 여기에 HBM3E 실적이 반영된다면 영업이익이 더욱 가파르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이 올해 하반기경 5세대 HBM을 정상적으로 출하할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이달 초 트렌드포스는 “삼성의 공급망 파트너 중 일부는 최근 HBM과 관련해 가능한 한 빨리 주문하고 용량을 예약하라는 정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HBM이 하반기에 원활하게 출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는 미래 표준으로 부상할 CXL(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 영토 선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CXL의 제품 명칭은 CMM으로, HBM과 역할이 다르다. HBM은 AI 가속기에 붙는 데 반해 CMM은 서버 CPU(중앙처리장치)와 연결돼 메모리 공간을 확장한다.
그간 서버 내부에 물리적 공간(슬롯)이 충분하지 않아 메모리가 부족하면 새로운 서버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CXL은 메모리와 스토리지(대용량 저장소), 가속기, 네트워크 등의 서로 달랐던 소통 언어를 통일해 이 한계를 극복했다. HBM이 다차선으로 탁 트인 고속도로라면, CXL은 다양한 종류의 차가 효율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교차로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엔비디아, AMD 등 빅테크들이 참여하는 CXL 컨소시엄의 회원사다. 메모리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