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강성부 펀드, 원스토어에 이어 넥스틴도 인수 불발
기한 내 인수 대금 납입하지 않으면서 주식매매계약 해제
연이은 인수 불발로 한양증권 자금 조달 불확실성도 커져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가 반도체 장비 기업 넥스틴을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KCGI가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한편, 인수 발표 이후 넥스틴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일부러 포기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고가 인수 논란이 일고 있는 KCGI의 한양증권 인수 건에도 관심이 쏠린다.
KCGI, 넥스틴 인수 무산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넥스틴 최대주주인 APS는 KCGI의 계약미이행으로 주식양도 계약이 무산됐다고 23일 공시했다. APS 관계자는 “KCGI로부터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통보문을 받았다”며 “계약금도 애초에 없었다”고 전했다. APS는 지난 6월 보유한 넥스틴 주식 135만 주(총발행주식의 13.1%)를 KCGI에 양도하는 SPA(주식매매계약)를 체결했다. 인수 대금은 총 945억원이다. 당초 양측은 주당 7만4,525원에 주식을 거래하기로 했으나 이후 가격을 7만원으로 한 차례 낮춘 바 있다.
넥스틴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전공정 검사(Inspection) 장비 회사로, 글로벌 산란광 검사(Dark Field Inspection) 장비 시장의 약 5%를 점유하고 있다. 공정 미세화와 수율 확보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업계 리더와 유사한 수준의 자체 개발 원천 기술을 보유했으며, 경쟁사 대비 월등히 낮은 장비 가격으로 국내 및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규 장비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EUV 웨이퍼 정전기 방지, 3D 낸드 및 HBM 검사 장비 등 제품 카테고리도 확장 중이다.
자금 조달 실패·넥스틴 주가 하락 등 원인
KCGI의 인수 철회 전조는 한 달 전부터 나왔다. KCGI는 구주 인수뿐만 아니라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넥스틴에 1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지난달 30일 이 계획도 철회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KCGI의 이번 넥스틴 인수 무산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된다. 먼저 업계에선 KCGI가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앞서 KCGI가 지난해 원스토어 투자를 위한 1,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펀드 조성에도 실패한 바 있어서다. 한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유동성 부족으로 출자자들도 보수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지 오래”라며 “KCGI는 인지도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인 만큼 자금 조달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가격보다 지나치게 낮은 주가도 계약 해제 요인으로 거론된다. 넥스틴 주가가 급락하자 KCGI가 자발적으로 인수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넥스틴 주가는 KCGI 인수 발표 전까지 7만4,600원이었지만, 철회 발표 전날인 22일까지 주가가 하락하며 5만500원까지 내려앉았다. KCGI 입장에선 인수가액을 낮추지 못하면 시가보다 30%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당초 KCGI는 넥스틴을 인수할 PEF를 별도로 설립해 SPA와 신주인수계약의 지위를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주가 급락으로 펀드 구성도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KCGI가 증권사 고액 연봉자 출신이 만든 신생 PEF 운용사와 넥스틴 공동 인수를 추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넥스틴 주가 하락으로 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 했지만, 불발된 것 같다”고 전했다.
한양증권 인수에도 영향 미칠까
이런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KCGI의 연이은 인수 불발이 한양증권 인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KCGI는 한양증권 인수와 관련해 외부투자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인데, 출자자 입장에선 거래 종결 가능성이 희박한 투자는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출자자들도 투자심의위원회를 포함해 보고 과정을 거치는 만큼 업무만 하고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면 힘만 빼는 셈”이라며 “당연히 딜 클로징(거래 종결) 가능성이 높은 딜을 선호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초 한양증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자 자격을 따낸 KCGI는 한양증권 주식 보통주 376만6,973주(지분율 29.6%)를 2,448억원에 인수할 계획이다. 아직 SPA는 체결하지 않았고, 가격과 조건 등에 대해 협의 중에 있다. 인수 재원으로는 자회사 KCGI자산운용을 이용한 담보 대출, 1,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 등이 거론된다.
KCGI는 우협 선정 전부터 한양증권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현 KCGI자산운용)을 사들인 데 이어 증권사까지 인수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가격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매매대금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우협 선정 공시 발표일인 2일 기준 한양증권 종가는 주당 1만5,580원으로, KCGI가 제안한 가격의 4분 1 수준이었다.
이에 시장에선 KCGI가 그동안 주장해 온 것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주행동주의'를 내걸며 대주주를 비판했던 KCGI가 '그들의 인수합병(M&A)' 행보를 고스란히 밟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양증권 인수전에서 KCGI가 제시한 경영권 프리미엄은 무려 317%에 이르며 소액주주 몫은 없었는데, 국내 M&A 과정에서 차등적인 프리미엄은 KCGI가 앞장서서 비난한 대목이다. 지배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는 것에 대해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규모 블라인드펀드가 없어 프로젝트펀드로 거래를 마쳐야 하는 KCGI 입장에선 자신들의 명분대로 소액주주에 대한 공개매수를 단행하기엔 체급이 부족하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수가격이 4배가 넘는다는 점에서 소액주주의 박탈감이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적지 않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외치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단기 차익실현을 우선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으로 DB하이텍 사례가 있다. 지난해 3월 KCGI는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 등을 앞세워 시스템반도체 생산 기업 DB하이텍 지분을 매입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KCGI는 지난해 6월 공개서한을 보냈고 결과적으로 DB하이텍은 경영 혁신 계획을 발표했지만 KCGI는 1년도 안 돼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29일 KCGI는 보유한 DB하이텍 지분 7.05%(312만8,300주) 중 5.63%(250만 주)를 6만6,000원에 DB아이앤씨에 블록딜(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DB하이텍 주가는 5만8,600원으로, KCGI는 약 13%의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했다. KCGI가 블록딜을 했다는 소식에 DB하이텍 주가는 하향세를 나타냈고, 8개월 넘는 시간 동안 주가 6만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6일 종가 기준 DB하이텍 주가는 40,35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