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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6위 무궁화신탁 ‘적기시정조치’ 위기 적극적 자금 조달에도 부채비율 증가세 “금리 인하로 유동성 확대해야”, 변수는 환율
국내 6위 부동산신탁회사인 무궁화신탁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기시정조치’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손실 누적이 그 원인으로, 여타 부동산신탁사 가운데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에서는 부동산시장 침체가 금융권 전반의 부실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금리 인하 및 내수 진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궁화신탁 순이익 64억원→순손실 165억원
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무궁화신탁은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기시정조치를 사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적기시정조치는 자산 건전성이나 자본 적정성 지표가 기준치에 못 미치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당국이 내리는 경영개선 처방책이다. 재무 상태에 따라 권고·요구·명령의 3단계 처분을 하며, 이후에도 요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영업이 정지되거나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무궁화신탁의 재무상태 악화는 장기화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손실과 부실이 누적된 탓이다. 특히 과거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벌인 ‘책임준공부 관리형(책준형)’ 토지신탁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건설사나 시행사가 자금난 등으로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신탁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구조다. 2010년대 건설된 대다수 물류센터와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등이 책준형 토지신탁 방식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장이 급격히 침체하며 수익형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고, 부동산신탁사들 또한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에 무궁화신탁은 책준형 토지신탁 관련 채권 회수를 위해 채권관리팀을 별도로 설치하는 등 조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무궁화신탁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순손실은 16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순이익이 64억원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3분기 영업용순자본비율(NCR)도 125%로 내려왔다.
NCR(영업용순자본/총위험액X100)은 신탁사의 재무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낮을수록 위험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현행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금융사 NCR이 150% 미만으로 떨어지면 경영개선권고를 내려야 한다. 2021년 3분기에 695%를 기록했던 무궁화신탁의 NCR은 2022년 398%, 2023년 253%로 꾸준히 하락했으며, 올 3분기에는 125%로 내려앉으며 위기를 공식화했다. 무궁화신탁 측은 “연말까지 NCR을 30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채비율 100% 넘는 신탁사 4곳
책준형 토지신탁과 관련한 부실을 떠안은 것은 여타 부동산 신탁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신탁사 임원은 “아무래도 동종업계에서 부실이 터지면 그 뒤로 줄줄이 비슷한 문제들이 나오지 않냐”며 “신탁업계 전반에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은행권에서 신탁업계에 대한 여신 심사를 까다롭게 할 경우 자금난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의하면 국내 신탁사 14곳의 올해 상반기(1~6월) 영업손실은 총 2,52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3,326억원을 낸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이들 신탁사 14곳은 작년 상반기에 당기순이익 2,574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472억원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에 더해 자금난에 시달리던 시행사와 건설사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신탁사가 자체계정으로 투입하는 자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세다. 이같은 신탁계정대여금은 지난해 12월 4조9,000억원에서 올 9월 말 기준 6조7,000억원으로 꾸준한 증가세에 있다. 분기 기준 증가 금액은 5개 분기 연속 5,000억원을 웃돈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신탁회사들의 외부 자금 조달도 증가하는 추세다. 교보자산신탁은 한양증권을 주관사로 200억원 규모의 1년 만기 사모 대출을 받았으며, 신한자산신탁은 고금리 영구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부채비율을 낮추고 있다. 또 KB부동산신탁,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등이 회사채 및 공모채 발행 또는 대출 등의 방법으로 자금 조달에 한창이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부채비율은 여전히 증가세라는 점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14개 부동산신탁사의 자기자본은 5조8,072억원으로 지난해 말(5조5,033억원)과 비교해 5% 이상 늘었다. 반면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52% 수준에서 올 3·4분기에는 69%까지 높아졌다.
이와 관련해 여윤기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분기 기준으로 올 3·4분기에는 소폭의 흑자전환이 이뤄졌다”면서도 “다만 업황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대손비용 감소에 따라 흑자로 돌아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신탁사도 4곳에 이른다”고 짚으며 “부동산 경기 등을 감안해 볼 때 실적 회복에는 다소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적 통화정책, 역효과 낳을 것”
이처럼 부동산시장 장기 침체가 금융권 부실 문제로 확대되면서 내수 진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는 모습이다. 적극적인 자금 조달로 당장의 급한 불은 진화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부실의 불씨가 언제든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신규 영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과거 사업에서 발생한 부실을 희석하고 갈 수 있는데, 내수경기가 이 모양인 탓에 부실은 부실대로 커지고 신규 영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금리 인하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11일 기준금리를 3.25%로 0.25%p 하향 조정하며 3년 2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섰다. 하지만 때늦은 금리 인하에 내수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정부 재정이 긴축적인 데다가 부동산 대출 규제까지 강화돼 시중 유동성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내수와 수출을 둘러싼 환경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적인 통화정책은 역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금리 인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제는 환율이라는 변수다. 원·달러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당선을 기점으로 미국 물가 및 금리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르기 시작해 지난 13일 장중 1,410원을 넘어서는 등 2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환율이 불안한 상황에서 기준금리까지 추가로 낮아지면, 달러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1,400원대 환율이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물가 불확실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선 지난달 금리 인하 이후 금융 안정 상황 점검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달 금통위에서는 금리 동결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