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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외교 정책 최대 현안은 대중국 ‘협력과 투쟁’ 균형 신임 총서기 부임에도 급격한 대외 정책 변화 움직임 없어 ‘경제, 정치 협력’과 자주권 수호 위한 ‘군사적 견제’ 병행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베트남 외교 정책의 최대 현안은 중국과의 ‘협력과 투쟁’(cooperation and struggle) 사이 균형 맞추기라고 할 수 있다. 대중국 전략이 협력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라는 우려 속에도 베트남 정부는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관계 강화와 중국의 남중국해(South China Sea) 도발 견제에서 평형 유지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베트남의 중국 견제는 군사력 증강과 지역 열강들과의 군사적, 정치적 관계 강화가 중심을 이룬다. 현존하는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베트남은 강대국들과의 관계 조율을 통해 자주권과 안정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베트남, 대중국 관계 ‘협력과 투쟁’으로 조율
베트남이 처한 외교적 입장과 능숙해진 균형 맞추기 속에서 주변국들은 2024년 8월 또 럼(To Lam)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의 중국 방문이 급격한 균형추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신임 총서기의 공안 경력과 반부패 캠페인 이력에도 불구하고 친중국 노선으로의 급격한 변화는 아직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정치 노선과 세계관을 보유했든 베트남 지도자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과의 평화로운 공존 속에 자주권과 자치권을 수호하는 것이다. ‘협력과 투쟁’으로 정의되는 베트남의 대외 전략은 중국은 물론 다른 열강들과의 관계에서도 핵심인데, 협력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친선을 추구하지만 국가적 이익과 자주권에 대한 위협에는 단호히 맞서겠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렇게 베트남은 중국과의 정치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면서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에는 저항하는 섬세한 균형 맞추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는 대중국 경제, 정치, 자주권 수호를 포함한 주요 영역에 모두 적용되며, 전략적 우위와 열위 요소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신중한 고려가 녹아 있다.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역사 문화적 관계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과 정치적 유대 강화에 십분 활용하되, 중국의 직접적 위협을 저지할 군사적 동맹이 부족하다는 약점은 군사력 현대화와 지역 열강들과의 협력 강화로 보완하는 것이다.
경제, 정치 영역에서 대중국 관계 강화에 최선
먼저 경제 측면에서 베트남은 주요 교역국이자 농산물, 섬유, 고무 등의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의 무역, 투자 관계 유지에 주력한다. 미중 무역 전쟁 심화로 인한 중국의 베트남 직접 투자 열풍도 대중국 경제 관계 강화에 한몫을 하는 요소다.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 중국의 인건비 인상, 시진핑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 지역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으로 인한 회원국 간 교역 원활화 효과로 인해 촉발됐다. 중국의 직접 투자 영역은 BYD, 알리바바, 체리(Chery) 등 거대 기업들에 의한 첨단 제조업, 전기차, 전자 상거래 분야 투자로 확대되며 과거의 단순 제조업 위주에 비해 그 패턴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베트남 정부는 잦은 고위 인사 방문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또 럼 총서기의 중국 방문 이전인 작년 12월 시진핑 주석이 하노이를 방문했고 2022년 11월에는 고 응우옌 푸 쫑 총서기의 중국 방문이 있었다. 공산당의 존재 자체도 양국의 정치적 협력을 강화하는 요소인데, 체제 유지라는 최대 현안을 공유한 양국 공산당은 워크숍과 상호 방문, 세미나 등을 통해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과 역사적 협력 경험이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셈이다. 공산당 간 교류는 2014년에 일어난 양국의 ‘석유 굴착장치 대치’(oil rig confrontation)를 비롯한 긴장 상황 해결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군사력 증강과 지역 협력 강화로 대중국 견제도 병행
하지만 이와 달리 안보와 군사 분야는 베트남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관련 도발에 맞서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베트남 정부는 현재 무기 도입이 지체되는 상황이지만 해군과 해안 경비 강화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미국 및 지역 우방국들과 해상 안보 강화를 위한 합동 훈련 및 역량 강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올해 8월 필리핀과 해안 경비 합동 훈련을 진행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와 배타적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 획정에 합의하고 해군 훈련도 진행한 바 있다.
물론 경제 및 정치 분야에서도 베트남이 중국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Biden administration) 지원하에 미국 주요 기업들로부터 인공지능과 반도체 투자를 끌어냈고, 숙원이었던 미국과의 외교 관계 격상을 포함한 다수의 전략적 관계 개선에서도 성과를 냈다. 럼 총서기는 중국 방문 이후 바로 미국을 방문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연설하는 등 대미 관계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베트남 당국이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호찌민 사무소 개설을 허용한 것도 관계 강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편 최근 들어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의 대중국 대치 역시 한층 부드럽게 풀어가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해안 경비대의 영해 침범을 공식화하기보다는 ‘관찰 및 추적’(shadowing and tracking)에 주력하고, 오히려 통킹만(Gulf of Tonkin) 합동 순찰 및 양국 선박의 항구 방문, 고위급 교류 등을 통해 해군 및 해상 경비 협력을 밀도 있게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의 대중국 전략은 우위 요소와 열위 요소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자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거나 변화가 불가피한 국제 정치 경제상의 구조적 변화를 제외하고는 현재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러한 균형 유지에는 상대국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높은 수준의 외교적 수완이 필요하기도 하다. 새로운 총서기 취임으로 베트남 외교 노선의 현격한 변화가 도입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지난 7월이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원문의 저자는 한 응우옌(Hanh Nguyen) 호주 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박사과정생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ooperation and struggle define Vietnam’s approach to China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