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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변경 안건 저지한 임종윤·종훈 형제 3자 연합은 신동국 이사회 진입 성공 갈등 격화하는 동안 그룹 실적은 ‘뚝’
한미약품그룹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갈등 교착 상태가 장기화에 돌입했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진입에 성공하면서 이사회 대치 구도가 선명해진 탓이다.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변화된 이사회 체제에서 더욱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경영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은 기업 역량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양측 모두 '절반의 성공'
28일 오전 서울 잠실역 인근 서울교통회관에서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임시 주총에는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의 차남 임종훈 대표와 관계자들이 함께 자리했으며, 임종윤 사내이사는 불참했다. 이들 형제 측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3자 연합 인물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및 임주현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송영숙 회장의 대리인으로 법무법인 세종 이숙미 변호사가 의결권을 위임받아 참석했다. 이 외에 소액주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임시 주총에 상정된 안건은 총 3가지로 1호 의안과 2호 의안은 3자 연합 측에서 제안한 △이사회 구성원 수를 10명에서 11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신규이사 신동국(기타비상무이사)과 임주현(사내이사) 선임의 건이다. 3호 의안은 형제 측에서 제안한 자본준비금 감액 건이다.
먼저 정관변경은 임시 주총 출석 주식 수의 66.7% 이상이 찬성해야 변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임시 주총 개시 전부터 가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해당 안건에 대한 표결 결과 찬성표는 3,320만3,317주로 출석 주식 수의 57.89%를 기록했다. 결국 이사회 구성원 수를 11명으로 증원하겠다는 안건은 특별결의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에 따라 최종 부결됐다.
신규 이사 선임은 정관변경이 필요 없어 의결권의 과반만 확보하면 추진할 수 있다. 신규 이사 선임 안건 중에선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후보자에 대한 안건이 먼저 상정됐다. 찬성 주식 수는 3,318만8,984주로 출석 주식 수의 57.86%를 기록해 가결됐다. 앞선 1호 안건에서 총 이사 수를 10명으로 제한한 만큼 임주현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자동 폐기됐다.
형제 측에서 제안한 3호 의안 자본준비금 감액 건은 자본준비금 1,000억원을 감액해 배당 가능 재원으로 활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영권 분쟁에 중립을 선언했던 국민연금공단 측에서도 해당 안건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95.13%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시장에서는 양측이 모두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형제 측은 정관 변경 안건을 저지했고, 3자 연합 측은 신 회장의 이사회 진입에 성공해 서로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는 데 일부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에서다. 임 대표는 이날 임시 주총 폐회 후 기자들과 만나 “회사를 위한 결정은 다른 분들도 모두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며 “이번 임시 주총으로 이사 수가 동률이 됐는데, 제가 조금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사결정 마비 가능성↑
이번 임시 주총 결과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은 형제 측 인물 5인과 3자 연합 측 인물 5인으로 재편됐다. 시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이사회 의사결정이 사실상 마비되는 ‘식물 이사회’와 다름없다는 평가가 팽배하다. 이사들이 독립적 의사결정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양쪽이 첨예하게 경영권을 다투는 상황인 만큼 자신들의 진영에 맞게 의사결정을 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이사회 마비 사태가 내년 3월 예정된 정기 주총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중 3자 연합 측 인물로 분류되는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는 만큼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양측의 날 선 공방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계열사 한미약품의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한미약품 임시 주총은 다음 달 19일로 예정돼 있다. 해당 임시 주총에서는 박재현 사내이사와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등 이사 2명의 해임 안건,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이사 등 이사 2명의 선임 안건이 올라가 있다. 신규 이사 후보에 오른 박 부사장과 장 대표이사는 모두 형제 측 인사로, 사실상 형제 측이 3자 연합 측 인물들을 모두 몰아내고 자신의 진영으로 채우겠다는 의도가 짙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의 캐스팅 보드로 꼽혔던 국민연금은 한미약품 임시 주총에서도 의결권을 중립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연금은 한미약품 지분 10.6%가량을 들고 있다. 국민연금의 선택 포기에 따라 한미약품 역시 상당한 혼란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한 제약 업계 관계자는 “한미사이언스에 이어 한미약품 임시 주총도 조만간 열리는 만큼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외부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영권 다툼에 신약 개발·사업 확장은 뒷전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면 기업 역량 훼손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높아지는 모습이다. 그룹의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주요 캐시카우 한미약품 간 경영 대립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중장기 성장은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동종 업계가 신약 개발에 전력을 다하며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한미그룹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이와 같은 시장의 우려는 한미사이언스 사업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올 3분기 한미사이언스는 연결기준 매출 3,225억원, 영업이익 224억원, 순이익 17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 37.2%, 4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미약품 또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11.4%, 42.3%씩 급감했다.
증권가에서 한미약품그룹의 주가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한다면, 기업 역량 훼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짚으며 “견조한 상반기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초 대비 주가가 하락한 것은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 1월 5만2,600원까지 오르며 고점을 찍은 후 급락과 급등을 반복, 29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3만3,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일 종가(3만5,700원) 대비 6.16% 하락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