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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대부업자 은행 차입 1,530억원 ‘서민 대출 공급 확대’ 효과 전무 대출 원가↑, 저신용자 외면 심화
금융당국이 우수대부업 제도를 도입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제도의 핵심 내용인 우수대부업자의 은행 차입금 비중은 전체 대부업 자금 공급의 1%가량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의 비판을 우려한 은행들의 정책 참여 의지가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대부업자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할수록 많은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지적하며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다.
우수대부업자도 자금 조달 95% 저축은행·캐피털 의존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수대부업자 19곳의 은행 차입액은 1,53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반기 차입액(615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계 전체 대출 잔액 12조5,146억원과 비교하면 1.2%에 불과하다. 19개 우수대부업자의 전체 대출 공급액은 약 3조원으로, 이와 비교해도 5%가량에 그친다.
2021년 도입된 우수대부업 제도는 저신용자 등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한 대출 공급 기여도가 높은 대부업자를 선정해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대부업의 경우 예금, 적금 등 수신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이율이 낮은 은행 차입을 허용하면 이자 비용을 줄여 사업에 유리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해당 제도를 통해 서민금융 공급을 활성화하고 불법 사금융 시장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4월에는 한 차례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정부는 반기별로 심사를 통해 우수대부업자 선정 및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기존 제도에선 유지 요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선정 취소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당국은 저신용 차주에 대한 대출 잔액이 제시된 요건보다 10~25% 부족해도 이를 개선할 기회를 2회 부여했다. 다만 이 같은 개선 기회에도 불구하고 자격이 취소된 대부업자에 대해선 재선정 제한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했다.
정부가 우수대부업 제도 개선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최근 대부업 대출 이용자 수가 갈수록 감소하면서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위험이 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감원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6월 기준 대부업 이용자 수는 84만8,000명으로 2022년 12월(98만9,000명)보다 14.3% 줄었다. 대출 잔액 또한 같은 기간 8% 감소한 14조6,000억원에 그쳤다. 제도 시행 후 2년이 지나도록 서민 대출 공급 확대 효과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은행 외면에 제도 취지 무색
이렇다 보니 대부업권의 반응도 비판 일색이다. 은행들이 여전히 대부금융에 자금을 융통하길 꺼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은 국책은행 자회사가 대부업체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비판에 대부업 취급을 중단했으며, 같은 해 하나은행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에 대출을 실행했다가 일부 시장 참여자의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금융당국의 우수대부업 제도개선 이후 우수 대부업체에 대규모 지원 정책을 계획한 곳은 5대 시중은행 중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제도 개선 후에도 여전히 까다로운 우수대부업자 선정 및 유지 요건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우수대부업자로 선정되면, 저신용자 대출 잔액을 직전 반기 잔액의 80% 이상 또는 우수대부업자 선정 당시 잔액의 9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화한 고금리에 해당 기준을 달성하기 어려워졌고, 직전 반기에도 1곳이 유지 요건을 달성하지 못해 우수대부업자에서 제외됐다. 제도의 혜택을 온전히 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자격 유지 또한 쉽지 않아 저신용자 대출 확대라는 취지 또한 점점 더 빛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연동형 최고금리제 등 도입 필요성 대두
대부업계는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으로 법정 최고금리 인상을 꼽았다. 정부는 2021년 7월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기존 24%에서 20%로 인하해 유지 중이다. 한 대부업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는 신용대출에 적용되는데, 대부업 신용대출은 대출 잔액이 대부분 1인당 300만~700만원에 몰려있다”고 짚으며 “최고금리가 1~2%p 더 오른다고 서민들의 부담이 크게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 차이는 크지 않은데,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도리어 서민들의 자금 융통 요건만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금리가 오를 때 법정 최고금리도 조정되는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시장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취약차주의 대출시장 배제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일부 해외 국가에서 시행 중인 연동형 최고금리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페이데이론(Payday loan)’과 유사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페이데이론은 통상 2주 간격으로 있는 급여일 상환을 조건으로 근로자들에게 소액 대출을 내주면서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이자를 허용하는 제도다. 금리 기준은 주별로 다르지만, 통상 30일 이내·500달러 이하 대출에 연 28%~36% 금리를 적용하는 곳이 주를 이룬다. 미국 외에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대출금액에 따른 금리를 차등적용 중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법정 최고금리 인상이나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최고금리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고금리 대출을 허용한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어 반서민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연동형 최고금리제 도입에 대한 필요성은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진정성에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얘기는 삼가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