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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텔레콤, 알뜰폰 사업에서 발 뺀다 "풀MVNO 만든다더니" 정부 알뜰폰 지원 공회전 KB국민은행·토스 등 거대 사업자 영향력 커지나
세종텔레콤이 알뜰폰(MVNO) 시장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급격한 실적 악화로 재무 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수익성을 내지 못하는 알뜰폰 부문을 정리해 신사업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정부의 미흡한 알뜰폰 시장 육성 노력이 관련 업계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종텔레콤, 알뜰폰 시장서 발 뺀다
2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종텔레콤은 2012년부터 운영해 온 알뜰폰 브랜드 '스노우맨'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텔레콤은 당초 자회사 온세텔레콤을 통해 알뜰폰 사업을 시작했으며, 2015년 조직 개편을 통해 통신사업부를 통합 운영해 왔다.
세종텔레콤이 알뜰폰 사업 매각을 결정한 배경에는 '경영 실적 악화'가 있다. 세종텔레콤은 올해 상반기에만 5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전체 영업손실(31억원)을 눈에 띄게 웃도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알뜰폰 부문이 기록한 매출은 23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에 불과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세종텔레콤이 수익성이 낮은 알뜰폰 부문을 매각하고 신사업 분야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스노우맨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는 알뜰폰 브랜드 '아이즈모바일' 운영사 아이즈비전이 거론된다. 현재 아이즈비전은 약 2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아이즈비전은 스노우맨의 가입자(17만 명)를 흡수하며 약 4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세종텔레콤은 "MVNO 사업 부문의 매각을 추진 중인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는 다각도로 검토하고 협의를 진행 중인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계약 체결 전이며, 성사되더라도 많은 절차가 남아 있다"며 "당사 이용자뿐 아니라 타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섣부른 추측은 자제해 달라"고 밝혔다.
길 잃은 정부의 알뜰폰 육성 방안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정부의 미흡한 알뜰폰 육성 정책이 세종텔레콤을 비롯한 알뜰폰 업체들의 위기를 가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통해 자체 전산 설비를 갖춘 풀MVNO 사업자를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알뜰폰 업체가 이동통신 3사로부터 망을 빌려 쓰는 현재 시장 구조로는 업계의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업계는 현재 통신사가 설계한 요금제를 단순 재판매하고 있는데, 자체 과금 및 영업 전산 설비를 갖추게 되면 독자 상품 설계가 가능해진다"며 "이통 3사와 같이 제휴·결합 할인을 통해 이용자를 모을 수도 있고, 청구·수납 대행 비용을 절감해 통신 요금을 추가로 인하할 여력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해당 정책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풀MVNO가 되려면 자체 설비 구축을 위한 막대한 투자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현재 알뜰폰 시장 내에 그만한 투자 여력을 갖춘 사업자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세종텔레콤은 앞서 총리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 주최 풀MVNO 육성을 위한 규제 개선 회의에 참여하며 사업 확대 의지를 피력했으나, 재무 상황 악화로 인해 풀MVNO 사업에 뛰어들기는커녕 알뜰폰 사업 자체를 매각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정책 실현을 위한 정부 노력도 부족했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풀MVNO 사업자에게 필요한 매출 수준이 산출된 바 없으며, 풀MVNO 출현을 위한 시장 환경을 만들어가면서 이에 대해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정부가 지원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사업자들의 기초적인 데이터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며 "(알뜰폰 업계가) 어느 정도 어려운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은행·플랫폼사, 업계 주축 될까
업계 한편에서는 정부 지원이 강화되지 않을 경우 은행, 플랫폼 기업 등을 중심으로 알뜰폴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시점 금융권 알뜰폰 사업의 대표 주자는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 사업 특례로 알뜰폰 '리브엠'을 선보이고, 통신과 금융 서비스의 결합에 힘을 쏟아 왔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분야를 연계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 은행은 통신 사업 진출을 통해 고객의 비금융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금융상품과 연계하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통신사는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한 고객 이동 정보, 통신비 납부 내역 등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며 "은행은 이를 소비 패턴 분석과 신용점수 측정 등에 활용하며 금융 상품 판매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짚었다.
토스나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도 알뜰폰 시장에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통신 서비스와 여타 자사 서비스의 연계를 강화해 이용자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토스는 토스 앱 내에 통신 서비스 부분을 배치해 토스의 다른 서비스들과 알뜰폰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카카오 역시 ‘스테이지파이브’를 앞세워 자체 금융 서비스와 통신 서비스의 결합을 노렸다. 카카오페이 내에 ‘통신, 로밍 메뉴’를 신설하고, 통신, 로밍 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카카오페이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스테이지파이브 이용자들은 알뜰폰 서비스뿐만 아니라 카카오의 다양한 서비스들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된다. 다만 스테이지파이브는 지난해 12월 지배구조 개편으로 최대주주가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서 임직원 참여 투자조합으로 교체됐고, 이후 지배력 요건 해제 및 공정거래위원회 심사 끝에 카카오와 계열 분리가 완료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