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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기술력’에 머문 우리 산업계, 날개 잃고 줄줄이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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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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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고도화 실패, 기간산업에도 먹구름
영업이익 축소·적자 전환에 ‘전전긍긍’
전통적 수익처 위기에 사업 전환 절실

기술 고도화를 이루지 못하고 정체된 산업 구조가 한국 경제 전반에 위기를 몰고 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업인 대상 강연에서 “지난 10년간 한국 산업계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한 것은 물론, 경쟁력도 키우지 못했다”고 지적했으며,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한국은 목표가 명확한 ‘계단식 혁신’에는 나름의 성과를 거둬 왔지만, 다음 성장을 이끌 새로운 산업 발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판적 해석은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국내 양대 전자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나란히 지난해 4분기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거뒀으며, 석유화학업계는 잇따른 공장 가동 중단에 이어 매각까지 검토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여기에 신사업으로 야심 차게 추진한 배터리까지 주춤하면서 ‘기술 선도국’으로 거듭나겠다던 포부마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포트폴리오 전환 늦은 삼성·LG전자 나란히 실적 하락

8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75조원, 영업이익 6조5,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65%, 영업이익은 130.50% 증가했으나 전기와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18%, 29.19% 줄었다. 특히 영업이익은 앞서 하향 조정된 시장 전망치(7조7,000억원)를 1조원 넘게 하회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실적 부진의 주요인으로는 주력 상품인 레거시(범용) 메모리의 수익성 악화가 거론된다. 스마트폰, PC 등 전방 IT 수요 침체가 깊어지면서 레거시 메모리 판매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까지 겹치면서 가격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메모리(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해 7월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수요가 높은 HBM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지만, 아직 전체 반도체 실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만큼 단기간 내 실적 개선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AI 칩 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 제품인 HBM3E 8·12단을 납품하기 위해 10개월 넘게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LG전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22조7,775억원, 영업이익 1,461억원의 잠정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3.3% 감소했다. 앞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LG전자의 지난해 4분기 실적 컨센서스(평균 증권가 전망치)는 매출 22조5,055억원, 영업이익 3,970억원이었다.

시장의 전망을 크게 밑돈 실적에 대해 LG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예상치 못한 글로벌 해상운임 급등과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한 재고 건전화 차원의 일회성 비용 등이 발생하며 수익성을 잠식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올해는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에 기반한 질적 성장에 더욱 속도를 낼 방침”이라며 “품질, 원가 등 사업의 근원적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고정비 효율화를 통한 건전한 수익구조 확보에도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들 기업의 희망찬 포부에도 시장의 반응은 암울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과 더불어 미국 차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비용 증가로 양사를 둘러싼 올해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라며 “특히 두 회사 모두 전통적 수익처가 중국 기업을 비롯한 경쟁사들의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빠른 사업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지원책 ‘역부족’만 외치는 석화업계

먹구름이 낀 건 석유화학업계도 마찬가지다. 최대 시장인 중국이 경기 부진에 빠진 데다, 대규모 증설로 자급률 100%를 눈앞에 두면서 국내 석화 제품 생산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의하면 2023년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량은 947만 톤(t)으로 전년 (1,038만t) 대비 9.6% 감소했다. NCC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비롯해 프로필렌 등 석화 제품의 기초 원료를 생산하는 공정이다.

국내 석화업계가 에틸렌 생산능력 증대를 위해 꾸준히 투자를 늘려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성적은 더욱 뼈아프다.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946만t에서 지난해 1,280만t으로 5년 사이 35.3% 증가했다. LG화학이 연산 330만t으로 가장 많으며, 롯데케미칼과 여천NCC가 각각 233만t, 228만t에 달한다. 늘어난 생산 시설에도 일감이 받쳐주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NCC 가동률은 지난해 70%를 겨우 웃돌았다.

문제는 NCC 생산량 및 가동률 회복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생산 증대 추세가 매우 가파른 탓이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65만t에서 지난해 5,174만t으로 두 배 가까이 늘며 미국(4,583만t)을 추월해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중국은 최근 원유에서 NCC를 거치지 않고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국내 석화업계의 더 큰 위기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이에 정부는 장기 침체에 빠진 석화업계에 대한 지원책으로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에틸렌 산업의 사업 재편을 위해 매각, 인수·합병(M&A), 설비 폐쇄 등을 지원하고,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기간을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또 범용 제품이 아닌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올해 상반기 내 ‘2025~2030년 R&D 투자 로드맵’을 수립해 발표하기로 했다.

다만 업계는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존폐가 걸린 석화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도 정부 합동 대책으로 설비 효율화, 스페셜티 개발 등 대책을 내놨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화 산업은 나프타에서 시작해 연결되는 공정이기 때문에 NCC를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 “다운스트림에서 원가경쟁력을 갖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新 동력 배터리도 적자 앞에 망연자실

반도체를 이을 핵심 신사업으로 주목받았던 배터리도 애초 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2020~2021년 30%대 점유율을 웃돌며 승승장구했지만 곧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아시아는 물론 유럽 등으로 세력을 넓힌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 직면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1월 이들 3사의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3.7%p 하락한 19.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 CATL과 비야디(BYD) 점유율은 41%에서 53.9%로 뛰었다.

더욱이 ‘맏형’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이 급하락하는 등 앞으로의 시장 상황 또한 어둡다. 공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매출 6조4,512억원, 영업손실은 2,25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중국산을 제외하면 전기차 시장 전반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으로 시름하는 데다, 그나마 수익성이 좋은 제너럴모터스(GM)향 판매 역시 크게 둔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적은 LG엔솔이 미국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실적에 반영하기 시작한 2023년 이후 첫 적자다.

초유의 위기에 배터리업계는 결국 비용 절감으로 무게 추를 옮겼다. LG엔솔은 자회사 미시간 법인에 대한 일부 유상증자 대금 납부를 기존 2024년에서 2026년으로 2년 연기하는 등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5기가와트시(GWh) 규모인 연간 생산능력을 40GWh까지 확대하겠다는 당초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SK온은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며, 삼성SDI도 내부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삼성SDI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0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0% 감소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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