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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홍콩 두 번째 상장 추진
美 국방부 블랙리스트 등재 리스크도
굳건한 시장 영향력에 K-배터리 ‘비상’
중국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CATL(닝더스다이·寧德時代)이 홍콩 증권시장 입성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CATL은 홍콩 증시에 두 번째 상장을 추진하면서 약 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을 필두로 한 중국의 ‘배터리 굴기’가 갈수록 보폭을 넓히는 가운데, 우리 배터리 업계 또한 시장 내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해외 생산 거점 확대에 대규모 자금 투입
15일 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CATL이 올 상반기 홍콩 증시 기업공개(IPO)를 위해 본격적인 진행 절차에 착수했다고 1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CATL은 이번 상장을 위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차이나인터내셔널캐피털, CSC파이낸셜 및 JP모건체이스를 주관사로 선정할 예정이다. CATL의 이사회는 지난달 홍콩 증시 상장을 승인했고, 현재 주주 및 규제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CATL이 해외 공장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자금 수요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CATL은 2022년부터 독일에서 최대 14기가와트(GWh) 규모의 유럽 내 첫 번째 공장을 가동 중이다. 500억 위안(약 9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된 연산량 100GWh 규모의 헝가리 공장 또한 연내 가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4위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스페인까지 보폭을 넓혔다. 유럽 내 생산시설 구축과 함께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CATL로서는 자금 조달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CATL이 홍콩 증시 상장으로 최소 50억 달러(약 7조3,000억원)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목표가 현실화할 경우 홍콩 IPO로는 2021년 이후 최대 규모가 된다. 앞서 중국 쇼츠(Shorts·짧은 영상) 플랫폼 콰이쇼우(快手)는 2021년 초 흥콩 증시에 입성하며 62억 달러(약 9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바 있다.
다만 CATL이 목표로 한 자금을 무사히 조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부의 제재와 관련해 리스크를 우려한 금융사 등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6일 미 국방부는 CATL이 포함된 ‘중국 군사 기업’ 명단을 공표했다. 해당 명단에 등재됐다고 해서 글로벌 사업 전개에 법적 제한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투자사 측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미국 컨설팅 업체 아시아그룹은 “투자은행들이 부정적인 기사에 언급되길 꺼리는 탓에 블랙리스트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안방 떠난 CATL도 ‘굳건’
미국의 견제와 시장의 우려 속에서도 CATL의 시장 내 영향력은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의하면 지난해 1~11월 CATL의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36.8%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 내 입지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점유율 26.1%를 기록하며 글로벌 배터리 시장 강자로 군림 중이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배터리 사용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점유율 하락을 맞았다. 지난해 1~11월 LG에너지솔루션은 84.2GWh의 배터리 사용량으로 중국 제외 글로벌 시장 점유율 25.9%를 차지했다. SK온은 35.2GWh의 사용량으로 점유율 10.8%를 기록했으며, 삼성SDI는 31.2GWh의 사용량과 8.9%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다. 이들 3사의 지난해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이 각각 27.5%, 10.9%, 10.0%였던 점을 고려하면 단 한 곳도 방어에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간 중국의 분전에 이렇다 할 입장을 내보이지 않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대응책 마련을 시사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 로컬 업체들의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제품은 물론 메탈, 설비 등 밸류체인 전반에서 심화하는 원가 경쟁도 큰 위협”이라고 밝혔다. CATL을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에 대한 우리 기업의 위기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부 지원·탄탄한 공급망 등에 업고 ‘훨훨’
중국산 배터리 약진의 배경에는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지속 가능성 확보를 강조하며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CATL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만 38억5,000만위안(약 7,253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재 채굴 및 가공에서 배터리 생산으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탄탄하게 구축했다는 점도 중국의 배터리 굴기에 힘을 보탰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남미와 아프리카의 대형 광산회사를 연이어 매입하는 등 광물 자원 확보에 총력전을 펼쳐 왔다. 그 결과 중국의 핵심 광물 지배력은 압도적이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를 제조하는 데 반드시 들어가는 흑연 점유율은 70%에 달하며, 망간(95%), 코발트(73%), 리튬(67%), 니켈(63%) 등도 꽉 쥐고 있다.
CATL의 주력 제품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경우, 양극재 생산원가의 42%를 차지하는 탄산리튬의 70%가 쓰촨·장시·칭하이 등 중국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인산철 전구체의 원료인 인산염을 만드는 인광석 또한 세계 생산량의 47%를 중국이 책임지고 있다. 선진국이 환경오염 등을 문제로 망설이는 동안 중국은 느슨한 환경 규제를 틈타 광물 제련산업을 고도화했다. 중국 업체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서 압도적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과의 경쟁 격화 속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지키기 위해 국내 배터리 업계는 기술력에서 답을 찾고 있다. 가격 경쟁력 강화에 한계가 있는 만큼 성능과 안전성으로 승부하겠다는 구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각형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직육면체 형태 알루미늄 캔에 양극과 음극을 담은 각형 배터리는 전기차용 배터리 중 가장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BMW, 벤츠, 스텔란티스, 볼보 등이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도 한창이다. SK온은 고분자-산화물 복합계와 황화물계 등 두 종류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각각 2027년, 2029년에는 상용화 시제품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대전 배터리연구원에 차세대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 중으로, 올해 하반기 완공 예정이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5’에서 원통형 배터리,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 전력용 ESS 솔루션 SBB1.5 등 최신 제품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삼성SDI 관계자는 “이번 CES2025 전시 테마를 ‘초격차 기술로 지속 가능한 미래 실현’으로 정하고 혁신 기술력을 선보이는 데 집중했다”며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등 여러 악재로 인해 배터리 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있으나, 선제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